스크린보단 브라운관에서의 모습이 더 익숙한 배우 이태란(41)이 영화 ‘두 번째 스물’(감독 박흥식)로 관객들을 찾았다. 묘한 제목은 스무 살의 풋풋한 사랑을 마흔 나이에 다시 한 번 곱씹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그는 남편과 사별하고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옛 연인을 만난 안과전문의 민하 역을 맡았다.

 

개봉을 앞두고 한 카페에서 만난 이태란은 “결혼 후 배우로서 성숙해졌다”고 자평했다. 그 동안 깊은 멜로, 밀도 높은 베드신과 거리가 있던 그녀가 ‘두 번째 스물’에서 이를 도전해 한 단계 성장한 면모를 선보인다.

 

Q.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다. 개봉을 앞둔 심경이 어떤가?

A. ‘두 번째 스물’은 작년 3월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서 촬영한 작품이다. 꽤 예전에 찍어둬서 개봉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식을 들어서 꽤 당황했다. 솔직히 영화 내용이 가물가물했다.(웃음) 인터뷰를 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라 예전 기억을 되살리면서 왔다.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면서 찍은 작품이 개봉까지 하게 돼 감격스럽다.

 

Q. 중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를 국내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관객들에게 다소 거리감이 있을 수 있는 소재인데,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A. 할리우드에선 보편적인 이야긴데 그간 한국에선 많이 나오질 않았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과거 사랑을 나눴던 중년 남녀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여행하면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가 참 잔잔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또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참 예술적이다. 덕분에 나 스스로도 업되는 느낌이었다. 비록 불륜의 냄새는 나지만(웃음) 여러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됐다. 몇몇 분들은 이 작품이 ‘비포 선셋’과 조금 비슷한 느낌이 있다고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 좋은 평가가 조금씩 들려와서 그래도 안심이 된다.

 

Q. ‘두 번째 스물’은 두 인물의 꾸준한 대화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대부분 ‘카라바지오’라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가 또 노골적인 19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고급과 저급을 오가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A.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까 얼굴이 두꺼워져서 편하게 19금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성인이라고 꼭 유식한 얘기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로 미술적 조예가 굉장히 얕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에 허겁지겁 준비를 했다간 어쭙잖은 지식으로 망신만 당할 것 같아서 특별히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워낙 카라바지오에 대해서 감독님이 조예가 깊으셔서, 그냥 믿고만 갔다. 나랑은 다르게 민하는 깊이 있는 캐릭터라 아는 척 연기했을 뿐이다.

 

Q. 영화의 멜로 감성을 따라가다 보면 수차례 베드신이 나온다. 흐름상 꼭 필요한 신이긴하지만 이제 결혼한지 2년 반 밖에 안 된 새댁으로서 조금은 부담됐을 것도 같다.

A. 그동안 배우로서 멜로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민하 캐릭터가 나이도 비슷하고 시나리오도 좋았기에 이번이 멜로를 연기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베드신은 민감했다. 그런데 신랑이 고맙게도 ‘갔다 와’라고 담담히 말해줘서 고마웠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들어서니까 굉장히 예민해지고 죄책감도 들었다. 그때 왠지 ‘내가 배우로서 자질이 있는가?’라는 고민까지 하게 됐다. 다행히 김승우 선배가 묵묵히 기다려줬다. 그 상황에서 설득하고 위로하려고 했다면 괜히 더 부담이 됐을 텐데,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Q. 이제 마흔이 넘었고, 유부녀까지 됐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졌을 것도 같다.

A. 아마 결혼하기 전에 ‘두 번째 스물’을 했다면 이해도가 달랐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신혼이고 감정도 좋을 때여서 작품 속 상황과는 다르지만, 결혼을 하고 다른 성향의 남자와 살다보니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과 감정의 폭이 조금 넓어진 것 같다. 배우로서 부족했던 공감 능력을 결혼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예전엔 오롯이 내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이젠 부부싸움을 할 때도 상대를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Q. 20년차 배우이지만 돌아보면 영화 필모그래피는 그리 많지 않다. 드라마에 보다 집중한 이유가 있었나?

A. 솔직히 의도적으로 영화를 안 할 배우는 없다. 예전에는 TV와 영화를 넘나드는 배우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영화에 대한 갈망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좀 초월했다. 어느 순간 영화든 드라마든 똑같은 ‘작품’으로 보게 됐다. 물론 윤여정 선배님이나 김미숙 선배님처럼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활동하는 건 누구나 원한다. 나뿐 아니라 좋은 배우들이 여러 창구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어쨌든 힘들었던 촬영도 잘 마쳤고, 이제 개봉까지 앞두고 있다. 무거웠던 마음이 좀 홀가분할 것 같다.

A. 결혼 생활도, 배우로서 행보도 요즘은 한결 마음이 가볍다. 힘든 걸 예전처럼 애써 끙끙 앓지 않고 조금 마음을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요즘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예전엔 몰랐는데 강아지 눈망울이 참 예쁘더라. 똥 치우는 게 일이긴 하지만...(웃음) 예전엔 스스로를 잘 챙기지도 못했었는데, 애완견까지 키우다니 내 자신도 놀랍다. 그러다보니 이젠 내 아이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Q. 앞으로 배우 이태란의 행보는 어떻게 이어질까?

A. 영화든 드라마든 현재는 차기작을 물색하고 있다. 결혼 생활에 충실히 임하다가 좋은 작품이 있으면 다시 팬분들게 인사드리고 싶다. 최대한 빨리 복귀하도록 노력해보겠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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