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오락액션영화 ‘마스터’가 설 연휴를 지나며 1일까지 544만 관객을 모았다. 조의석(41) 감독의 얼굴에 웃음과 긴장이 일렁인다. “영화 더 찍다가 암 걸리겠다”고 엄살을 떨던 감독은 듣는 이가 놀랄 정도의 솔직함으로 삼청동 카페 안 공기를 훈훈하게 채워갔다.

 

- 흥행세가 만만치 않다. ‘감시자들’(2013·누적관객수 550만명)을 경험했으니 스코어에 대한 ‘감’이 잡히지 않나.

▲ 첫 주에 100만이 넘은 ‘감시자들’ 때도 멍했다. 큰 욕심을 내진 않고 ‘감시자들’ 스코어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소박하게 꿈꿨다.

- ‘마스터’에 대해 ‘감시자들’(누적 관객수 550만명)과 비슷하다, 전작보다 퀄러티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 ‘감시자들’은 선택과 집중에 대해 호평을 받았다. 이번엔 사이즈(대규모 제작비)에 대한 압박이 있어서 관객층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감시자들’의 템포보다 친절해야 한다고 여겼다. 너무 설명적인 부분, 군더더기에 대한 지적, “조의석이 영점을 맞춘 거네”란 평단의 이야기도 봤는데 일정 부분 수긍한다. 똑같이 만들려하진 않았고 대신 새로운 호흡을 만들고 싶었다.

- 이 소재에 착상하게 된 계기를 들려 달라.

▲ 무려 4조원에 이르는 피라미스 사기사건 용의자 조희팔이 2011년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서부터였다. 급하게 화장을 치렀는데 국과수 감식 결과 판독 불가 판정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걸 보고 ‘이건 뭐지?’ 했다. ‘감시자들’ 끝나고 새 작품 시나리오를 쓰려던 찰라에 그때 해놨던 스크랩이 딱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리얼로 가다가 뒤에는 상상으로 버무려지는 구조, 정의가 구현되는 이야기를 해보자로 이어졌다.

- 등장 인물들의 두뇌 플레이가 이뤄지는 서울편, 본격적인 추격 및 액션이 펼쳐지는 마닐라편의 2부 구성이 돋보인다. 리듬감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 진회장(이병헌)이 필리핀으로 밀항하기 전까지 1부에서는 캐릭터 소개 및 사건 진행에 초점을 뒀다. 속고 속이는 느낌을 리얼 베이스로 갔다. 2부는 장르적으로 확 갔다. 상상력이 더해진 인물을 부각시켰고 리듬도 다르게 갔으며 액션도 과하게 갔다.

 

 

- 필리핀 마닐라는 한국영화에선 별반 등장하지 않는 배경지다. 영화 인프라도 열악한 곳이라 왜 선택했을지 궁금했다.

▲ 모든 사람들이 태국을 추천했으나 그동안 많이 다뤄서 더 새롭게 보여줄 게 있을까 싶었다. 실제 범죄자들이 가장 많이 도망가는 곳은 필리핀이다. 총기 허용 국가이며 사기행각을 벌인 진회장이 도망간 공간으로 적합했다. 지난해 5월26일부터 7월6일까지 체감온도 47도의 마닐라에서 강행군을 벌였더니 많이들 탈진하고, 나 역시 12kg이 감량됐다. 리얼한 빈민가 톤도를 찾아내 카메라에 담아낸 게 짜릿한 기쁨이었다면 촬영 중 동원씨가 목을 다친 건 오싹한 경험이었다.

- 범죄오락 장르에서 형사 캐릭터는 유쾌한 모습으로 정형화된 경우가 많은데 김재명(강동원)은 매우 진지하다. 박장군(김우빈)과의 케미스트리를 살리기 위해 전형성을 따르고 싶은 유혹은 없었나?

▲ 강철중(설경구)도 있고, 서도철(황정민)도 있는데 형사 캐릭터를 가지고 뭘 더 할 수 있겠나.(웃음)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캐릭터는 없기에 오히려 반대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솔리드한 인간 김재명의 매력이 살지 않았을까. 박장군과의 케미를 만들 수도 있었으나 지능범죄수사대라는 롤이 있으니까 콘트라스트를 만든 게 결과적으로 좋았다. 이런 형사도 먹혀야 한다는, 일종의 나의 도전이었다.

- 그런 김재명을 연기한 강동원은 강인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잘 살려낸 듯 보인다.

▲ 동원씨가 너무 잘 해줬다. 촬영 첫 날, 첫 신의 대사가 엄청 길었는데 소화하는 걸 보고 ‘김재명은 됐구나’ 생각했다. 강동원이란 배우 고유의 매력이 있었고. 내가 생각한 캐릭터의 결을 잘 살려줬다.

- 김재명은 외압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다. 너무 이상적이라 판타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김재명이 ‘현실’이어야 하는데 ‘이상’이라는 게 어찌 보면 슬픈 현실이다.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편하게 세상을 살 수 있지 않나. 물론 나도 아주 투명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으나 나이가 들수록 가치와 양심을 들여다보게 된다.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 프레임에서 말한다면 김재명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지금의 보수들 말고.

 

 

- 진회장 역 이병헌의 경우 ‘내부자들’에서 이미 이런 캐릭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줘서 더 나올 게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 그런 이유로 지난해 말 ‘내부자들’을 보고 멘붕에 빠졌다. 선배님과 진회장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이런 말을 하셨다. “내부자들은 딥한 이야기였고, 이건 경쾌하니까 놀아보지, 팔색조란 걸 보여주지 뭐”. 촬영 중 선배님이 애드리브를 맘껏 구현했는데 재밌었다. 천상 하늘에서 내려준 배우다. 예전엔 머리로 연기하는 스타일인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선배님이 40대가 된 이후 본능도 같이 쓰시는 것 같다. 마닐라에서 선배님의 숙소에 가보면 맥주 한 캔에 시나리오가 딱 펼쳐져 있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선배님의 차기작 그리고 50대가 기대된다.

- 김우빈은 이런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잘 뽑아낸다. 그래서 너무 소모적이지 않은가란 걱정도 든다.

▲ 자신을 소모하는 대본이 어떤 건지 간파할 정도로 굉장히 영리한 친구다. 박장군 제의를 받았을 때 “이걸 왜 안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물론 ‘기술자들’의 답습이 될 수 있고 ‘스몰’의 캐릭터가 나올 수도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난 그에게 “그냥 이 안에서, 선배님들 사이에서 잘 놀아라”라고 주문했는데 정말 잘 놀았다.

- 3명의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조연, 단역들 대부분이 신 스틸러로 손색이 없었다. 적재적소의 캐스팅, 앙상블이 빼어났다.

▲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 한 화면에 담겼을 때 조화로울 수 있을까, 주변에서 우려를 많이 했다. 묘하게 안 어울리는 거 같단 얘기도 들었으나 다행히 밸런스가 잘 맞춰줬다. 신나는 걸 하고 싶어 했던 엄지원씨의 경우 공들인 액션장면이 편집돼 너무 미안하다. 이번에 실제 성격이 나온 듯하다. 사채업자 신선생 역 박정자 선생님의 경우 “너 뭐하는 새끼야!” 대사를 그리 멋있게 쳐주실 줄은 몰랐다. 김엄마 역 진경씨는 원래 그렇게 잘 하는 배우다.

 

 

- ‘감시자들’이 끝난 2015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 이듬해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당시 써내려간 영화 속 현실과 현재 대한민국 현실이 닮은 구석이 많다. 그 지점에서 관객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여기지 않나 싶다.

▲ 현실의 결론이 더 좋지 않나? 김재명의 대사 가운데 “나 같은 미친놈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가 있는데 지금은 여러 분들이 나서서 하니까.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가담한 사람들의 통화내용, 비망록을 보면 현실이 너무 웃긴다. 국민이 체감한 현실이 있어서 창작자들이 더 가도 되겠구나,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부끄럽지만 자기검열을 자동으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에라 모르겠다’ 했는데 더 ‘에라 모르겠다’ 할 걸 그랬다.(웃음) 동원씨가 농담처럼 “이러다 감독님 블랙리스트 오르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난 “영광이죠”라고 했던 것 같다.

- ‘일단 뛰어’ ‘감시자들’ ‘마스터’, 범죄오락영화를 연이어 만들고 있다.

▲ 유년기부터 형사물, 미드를 많이 봤다. 나름의 교육이 됐고, 왠지 경찰과 형사가 좋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하는 장르적 시도가 좋다. 멜로, 호러는 진짜 못한다. 다른 장르물은 관객으로서 즐기면 되지 않나. 예전에 스릴러 ‘조용한 세상’(2006) 때 무리한 시도를 많이 해서 관객에게 외면당한 뒤 7년이나 쉬어야만 했다. 그때 반성을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영화도 좋아한다. 순간의 감정이라든지 작가적 에너지라든가 미장센, 커트 등은 배울 게 많아서 내가 시도하는 장르에 안착시킬 수 있다. 워킹타이틀 같은 로맨틱 코미디, 휴먼드라마는 해보고 싶긴 하다. 지금은 계속 신나는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

- 그렇다고 당신의 영화가 말초적 흥미만 휘젓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나.

▲ 예전에 나의 인생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이었고, 지금은 리얼리즘에 기반한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들어온 다르덴 형제 감독의 ‘로제타’다. 상업영화, 예술영화를 구분하기보다 깊이 파들어가 관객의 동의를 구하느냐, 유쾌하게 풀어내느냐의 문제인 듯하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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