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한 몸매와 개성적인 마스크로 주목 받던 이솜(27)이 지난해 ‘좋아해줘’ ‘범죄의 여왕’을 거친 뒤 올해 ‘그래, 가족’(2월15일 개봉)에 이르러선 배우로 한 뼘은 성장한 모습이다. 한결 자연스러워진 연기가 노력의 부피를 느끼게 해준다.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느닷없이 나타난 막둥이 동생을 둘러싼 4남매의 소동극을 다룬 휴먼 코미디다. 교복을 연상케 하는 블랙 원피스 차림의 여배우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 초긍정 만년 알바생 주미, 분신처럼 소화

오씨 집안 4남매 중 셋째인 주미는 밝고 긍정적인 만년 아르바이트생이다. 길거리 내레이터 모델과 카페 알바를 전전하고, 틈틈이 연예인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바쁘고 고달픈 청춘이다.

“언니 오빠한테 어린 동생처럼 행동하는 철부지와 막내란 단어를 생각하고 작품에 임했어요. 저도 실제 막내인데 주미와 같진 않아요. 언니 오빠한테 돈을 뜯어본 적도 없고요.(웃음) 언니와 친구 같은 관계이지 동생 같진 않아요.”

가족영화를 표방한 작품에 등장하는 오씨 가족이 너무 매정해 보였다. 서로 왕래도 없이 지내다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돈 이야기로 목청을 높이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화합하는 모습이 잘 나올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를 놓치지 않았다.

“관객 입장에서 따뜻한 가족영화를 보고 싶었고, 해보고 싶었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에요. 요즘 따뜻한 가족영화가 없으니 적절한 시기에 개봉하는 듯해 만족스럽고요. 주미가 오빠 언니보다 낙이를 챙겨주는 캐릭터라 만족했지만 더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아역 배우와 공연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정)준원이가 워낙 밝고 똑똑한 친구라 첫 촬영부터 가까워졌어요.”

 

 

■ 오토바이·봉고차 운전, 수화 구사, 내레이터 모델 ‘열일’

촬영 현장에서 마대윤 감독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며 애드리브를 많이 만들었다. 장례식장, 오디션 장면에 그의 아이디어가 녹아들었다.

“실제 모델 일을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연기 시작하면서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오디션장에서 저나 심사위원들의 어색한 분위기가 속속 떠올랐죠. 그래서 오버스럽지 않은 대사를 찾아내 채택되기도 했고요. 실제 어떤 오디션에는 노래, 춤을 요구하는데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자신 없어했던 기억이 나요. 캐릭터 연기는 그나마 연습해서 하면 되니까 열심히 준비를 했고요.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주미의 오디션 신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가족’ 안에서 소처럼 열일 했다. 내레이션 모델부터 수화를 하고, 오토바이를 몰고, 봉고차 액션에도 도전해야 했다. 이 모든 걸 촬영 초반에 다해냈다.

“오토바이는 처음 몰아봤어요. 뒤에 준원이를 태워야 하니 불안하더라고요.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어려워요. 봉고차를 이용한 카 체이싱 창면은 순조롭게 이뤄졌죠. 차 액션도 나름의 요령이 있어서 콱 박으면 안 되고 한번 핸들을 살짝 꺾었다고 크게 도는 식으로 해야 각이 잘 나와요. 제일 힘들었던 건 내레이터 모델 동작이었죠. 신촌 길거리에서 춤추면서 마이크를 잡고 홍보를 하니...처음이라 어색하고 창피했어요. 특히 가발이 너무 창피해서~”

 

 

■ 올해 ‘대립군’ ‘소공녀’ 개봉 줄이어

그에게 디렉터스컷 신인상을 안겨준 19금 멜로영화 ‘마담 뺑덕’(2015) 이후 꾸준히 영화 필모그래피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옴니버스 로맨스영화 ‘좋아해줘’의 나연, 저예산영화 ‘범죄의 여왕’의 게임폐인 진숙을 통해 평단의 찬사를 얻었다.

“그 전에는 작품이 별반 없어서 많이 쉬었어요. 어떤 분들은 ‘마담 뺑덕’ 이후 너무 작품을 안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하셨어요. 그래서 뿌듯함을 느끼기엔 아직 멀었죠. 다만 꾸준히 작품을 찍어가는 거에 관심이 많아요.”

관객과 만나게 될 차기작이 꼬리를 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대립군’(감독 정윤철) 촬영은 이미 마쳤다. 광해(여진구)를 보필하는 궁녀 덕이 역할이다. 공교롭게 ‘마담 뺑덕’의 여주인공 덕이와 이름이 같다. 이어 이달 중 안재홍과 함께 ‘소공녀’ 촬영에 들어간다. 발랄하고 신비로운 현대판 거지 미소 역이다.

“‘마담 뺑덕’ 땐 정우성 선배님, ‘대립군’에선 이정재 선배님과 호흡을 나눴는데 현장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점에선 똑 같으시더라고요. 너무 배울 게 많았던 작업이었어요. ‘소공녀’는 너무 재밌을 거 같아 기대가 커요. 안재홍씨도 재미난 배우이고, 파트너로 나오는 이들도 대학로의 유명한 연극배우들이라 배울 게 한 가득이지 않을까 싶어요.”

 

 

■ 모델 출신...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성장

2008년 모델 오디션프로 최종 우승자 출신인 이솜은 2010년 ‘맛있는 인생’의 주연으로 배우 데뷔했다. 2011년 KBS2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같은 모델 출신인 김영광 이수혁 김우빈 성준 홍종현 등과 출연했다.

“배우는 모델과 달리 카메라 앞에서 풀려야 하고, 소리를 내 표현해야 하므로 모델의 관성을 지워버리고 연기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해요. 전 잘 지워지질 않아서 힘들었어요. 모델은 멋있고 화려하고 폼 잡는 면이 있잖아요. 포즈를 잘 취해서 옷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게 임무고요. 배우는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라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요.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를 하려 하고요.”

매년 한라산을 오르면서 새해 목표를 다지는데 아직까진 가질 못했다. 그의 신년 계획을 물었다. 대뜸 작품을 대답한다.

“기회가 된다면 또래의 배우와 함께 요즘 시대의 연애관이 담긴 달달한 로맨스를 하고 싶어요. 동갑내기 강하늘과 호흡이 척척 맞았던 ‘좋아해줘’ 때 살짝 맛만 봐서 아쉬웠거든요. 또 다양성 영화나 독립영화에도 많이 출연하고 싶고요.”

 

■ 에필로그...“사랑 많은 줄리엣 비노쉬처럼 늙고파”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 덕후다. 이 배우의 작품 커리어가 대단해서다. 선택하는 작품마다 메시지가 뚜렷하다.

“남녀의 멜로가 됐든, 가족의 사랑이 됐든 항상 사랑을 이야기하는 분인 듯해요. 그래서 너무 멋있게 늙어가잖아요. 자신을 잘 아는 게 아름답고 멋있는 거 같아요. 저 역시 그러면서 잘 늙어가고 싶어요. 저는 아직 제 자신을 잘 모르겠어요. 주미와 저는 닮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주변 분들은 성격이나 밝은 느낌이 닮았다고 하세요. 그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내게 이런 모습이 있구나를 깨달아가고 있죠.”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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