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미담 제조기’라 불리며 선한 이미지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배우 강하늘(27)이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에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선한 미소는 잠시 내려놓고 불만 가득한 눈빛, 쌍시옷을 달고 사는 거친 입을 보유한 불량 캐릭터 현우를 만났다.

 

그가 짊어진 ‘재심’ 속 현우는 배우로서 이미지 변신이라는 지점은 물론,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부담감이 가득 끼어 있는 배역이다. 누구보다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강하늘은 “오직 시나리오에만 집중했다”고 밝히며 모범적인 배우의 자세를 드러냈다.

 

- 모범적인 이미지의 강하늘이 불량소년 현우 역을, 껄렁한 이미지의 정우가 변호사 역을 맡았다는 사실이 꽤 재밌다.

처음 캐스팅 소식이 발표되고 기사가 쏟아졌을 때, 정우 형이 댓글을 읽고 “야 우리 역할 바뀐 거 아니냐고 하는 데?”라고 말해줘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바라봐 주는 시선이 참 재미있다.(웃음)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선입견 같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관객들에게 이미지와 다르게 전달되는 느낌이 어떨지도 꽤 궁금하다.

 

- 캐릭터가 가진 불량스런 이미지를 위해서 헤어나 메이크업도 직접 제안했다고 들었다.

대본을 처음 받고서 생각했던 게 하나 있다. 되게 착하기만 했던 사람이 누명을 쓰고 억울함을 느끼는 내내 그저그런 모습을 지양하고 싶었다. 그런 작품은 너무 많이 나왔었고, 그런 걸 볼 때 마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왜 누명을 쓰나?’라고 의아한 생각이 들곤 했다.(웃음)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나 오해 사기 쉬운 외형은 어떨까?’라고 비틀어서 고민해봤다. 장발에 브릿지 염색도 하고, 문신도 추가로 몇 개 더 그려 넣었다. 2000년 배경에 맞춰 일부러 더 촌스럽게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다.(웃음)

  

- ‘동주’ ‘쎄시봉’에 이어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게 벌써 세 번째다. 픽션 인물과 연기하는 데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작품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표현해야 할 것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주’를 촬영할 때 사실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 계시지 않은 그 분을 내가 연기로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오싹했다. 그런데 사실 팩션 영화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누구라도 수긍할 만큼 극화시킨 거다. 기본적으로 재밌어야하고, 관객의 몰입을 요구해야한다. 괜히 실화를 연기로 끌어드리려고 하면 오버하게 되는 것 같다. 배우는 시나리오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사실 촬영 당시에 아직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도 앞선 마음가짐은 변함이 없었던 건가.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내게 책임감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기자라면 시나리오 안에서 재밌게 캐릭터를 구현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기를 하면서 실제 주인공인 최 군에 대한 감정을 안 가질 수는 없었다. 잘 해결됐으면 좋겠단 생각은 당연히 했지만, 실제 사건은 현실 안에서 풀어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괜히 영화에 실제 사건이 개입되면 재판에도 좋지 않은 일인 것 같고, 영화 자체의 의미도 퇴색될 것 같다.

  

- 앞서 ‘동주’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제로 그 이후 배우 강하늘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늘었다. 김태윤 감독도 ‘동주’를 보고 출연을 제안했다고... 흥행 욕심을 내비추시더라.(웃음)

하하하. 감독님과 흥행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사실 스코어적으로 봤을 때 내가 대단한 작품을 한 건 없다. 주변 친구들이 오히려 “넌 흥행 욕심 없어?”라고 묻는다. 그런데 흥행은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다만 보시는 분들이 연기를 보고 창피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흥행은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다. 벌어서 웃지는 못해도, 잃어서 슬프지는 않아야 좋은 것 아닌가.(웃음) 천만? 그건 내 그릇이 아니다.

 

- 작품을 선택할 때 상업적인 부분보단, 예술적 성취를 바라는 부분이 더 큰 것인가.

 

예전에 스스로에게 참 많이 했던 질문이다. 예술과 상업.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예산이 얼마나 들고, 메시지가 뭐고 이런 기준은 너무 추상적인 것 같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스물’ ‘동주’ ‘재심’ 다 느낌은 다르지만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즐겁게 찍었다. 남들의 기준에 맞춘 선택은 즐겁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

  

- 여성 팬들이 원하는 작품을 할 생각은 없는가.(웃음)

저를 좋아해 주시는 건 너무나 감사하다.(웃음) 하지만 ‘재심’이나 지금 촬영 중인 ‘청년경찰’을 봤을 때, 아직은 여성 팬들의 시선보다는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게 우선인 것 같다. 연기변신이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려'를 찍을 때도 그랬다.(웃음) 앞으로도 저에게 들어오는 캐릭터들, 제가 끌리는 작품대로 갈 것 같다. 연기가 행복해야 보는 관객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 마지막으로 ‘재심’을 곧 관람할 예비 관객들에게 당부의 메시지가 있을까.

어떤 메시지를 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각자의 감정대로 담담히 봐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딱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실제 사건의 모티프가 됐던 그 분이 살아가다가 한 번 쯤 중간중간 힘든 날이 있을 때, ‘재심’이라는 영화가 그 분께 조금의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젠 무죄판결도 나셨으니까 조금 편안하셨으면 한다.

 

사진=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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