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수식어를 뛰어넘어 유럽의 대표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우뚝 선 조성진이 신보 ‘방랑자’를 오는 5월 8일 발표한다. 세계적인 음반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네 번째 스튜디오 레코딩인 새 앨범에는 젊은 거장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베르크, 리스트의 작품이 담겼다.

쇼팽(2016), 드뷔시(2017), 모차르트(2018) 앨범으로 클래식계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동안 조성진은 각지에서 연주하며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전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려왔다. 대륙과 문화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방랑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조성진은 이번 앨범을 통해 그간 쌓아온 그의 낭만을 모두 보여준다. ‘방랑자’ 가곡의 선율을 차용해 탄생한 다소 우울하지만 동시에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꼽히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기교적으로 힘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S.178을 연주한다. 두 작품을 잇는 곡으로는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1을 선택했다. 리사이틀 시 자주 선보인 베르크와 리스트의 소나타를 연속으로 연주하는 조성진의 해석을 음반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묘미다. 프랑스 파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인 조성진과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앨범 제목을 ‘방랑자’라고 지은 이유와 전작들과 달리 여러 음악가의 작품을 한 앨범에 담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 지금까지는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이렇게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했는데 사실 레코딩 할 때 더 편하고 쉽다. 한 번은 리사이틀 프로그램같이 여러 작곡가들을 엮어 녹음을 해보고 싶었다. 고심 끝에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다른 곡들을 정했다. 세 곡은 소나타 형식의 곡인데 악장마다 연결이 돼 있다. 그래서 한 악장 소나타처럼 들린다. 리스트 소나타도 마찬가지고, 베르크 소나타는 한 악장의 곡이긴 하지만 몇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곡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방랑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2악장 때문인데 ‘방랑자’ 가곡의 주제를 따와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방랑이라는 게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거 같다. 특히 슈베르트한테는. 물론 리스트도 낭만시대의 작곡가였고 그 분도 여기저기에서 살았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예술가, 피아니스트나 뮤지션들을 보면 여행을 많이 하지 않나? 이 시대 뮤지션과도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해서 그렇게 선택했다.

 

- 레코딩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 지난해 6월 베를린에서 슈베르트와 베르크를 녹음했다. 녹음을 다 마치고 청중 20~30명 초대해서 연주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쳤다. 그게 ‘방랑자’ 환상곡 뮤직비디오 장면이다. 그 테이크를 사용했다. 녹음을 다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 들어보니 관객들 앞에서 친 그 테이크가 가장 괜찮게 들렸기 때문이다. 10월에 한국에서 리스트 소나타를 레코딩했다. 리스트 소나타는 사실 30분짜리 곡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연주하는 게 너무 어렵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녹음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흐름에 있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대한 라이브처럼 들리게 녹음하려고 했다. 항상 녹음이 연주보다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으로 남는다는 거에 대한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 가장 어려웠던 곡은?

▲ 리스트 소나타 녹음이 가장 어려웠다. 긴 곡이며 스케일도 크고,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리스트의 경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쳤고, 처음 무대에서 연주한 게 2011년이었다. 그 이후 3년에 한 번씩은 연주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음악적 관점, 해석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관객이 있을 때 더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오는 이유가 있나?

▲ 레코딩에 있어 두 종류의 아티스트로 나뉘는 거 같다. 먼저 글렌 굴드 같은 레코딩 아티스트가 있다. 또 최근 비킹구르 올라프손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바흐 앨범을 들었는데 정말 굉장한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레코딩 아티스트는 나와는 다르게 관객이 없어도 완벽한 음악이나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거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난 관객이 있는 게 조금 더 편하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음악을 더 잘 만들어준다. 그래서 레코딩도 연주회 하듯이 하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 같다.

 

- 전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로서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방랑의 고독함인가 아니면 자유로움인가.

▲ 슈베르트와 나를 비교하는 게 무리가 따르겠지만 파리로 유학을 2012년에 떠났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한국에 오면 거기가 또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거기가 또 집 같기도 하고 어디가 진짜 집인지 잘 못 느꼈다. 그런데 베를린으로 이사 오고 나서 생각해보니 베를린에 1년에 4개월 정도 있더라. 항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게 내 직업이니까. 하지만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인 것 같기도 하고 호텔에 오면 또 편해서 집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결국 ‘내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원래 외동아들이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있는 걸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진 않는다. 오히려 연주하러 다니면 사람들(오케스트라 단원들, 지휘자, 다른 아티스트 등)을 많이 만나니까. 그래서 난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

-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가. 또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점에 중점을 뒀나.

▲ 내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 중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다. 그런데 테크닉이 어려운 걸 감추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다.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이 곡이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하는 게 관건이다.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지는 게 있더라. 그리고 이 곡은 상상력이 많이 가미됐는데 악장마다 캐릭터도 다르다. 그런 것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

 

- ‘방랑자 환상곡’은 옛 대가들의 명반이 많다. 이 명반들의 숲에 자신의 것을 내놓으면서 조성진의 유니크함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 있나?

▲ 그런 생각은 별로 안한다(웃음).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해질까’란 생각을 하면 더 부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다. 억지스럽고. 그래서 내가 생각한 대로 치고 이런 게 오히려 제일 개성 있는 연주가 되지 않나 싶다. 사람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치는 것도 다 다르더라.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칠까 이런 생각 말고, 그냥 자연스러운 게 가장 개성 있는 거라고 여긴다.

사진= Christoph Köstlin, DG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