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발생한 리지 보든 살인사건을 재해석한 뮤지컬 '리지'가 지난 4월 국내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리지 보든의 이야기를 영화나 책으로 접한 사람이라면 주인공 리지 못지않게 그와 특별한 감정을 공유한 인물에 관심이 갈 터다. 어느새 10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최수진이 리지와 애정을 나누는 앨리스 러셀 역할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번 공연은 강렬한 록음악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록뮤지컬이다. 배우들의 록스피릿 폭발하는 무대가 관객들을 사로잡는 매력포인트다. 하지만 무대에서 맘껏 록을 즐기던 것과 달리 최수진은 의외로 "전혀 록알못"이라 밝히며 이번 무대 준비과정을 전했다.

"특별히 록음악 발성을 준비하진 않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콘서트가 아니라 뮤지컬이고 드라마다보니 캐릭터 감정에 따라 부른 것 같아요. 앨리스 역할도 록적인 발성으로 인물을 표현해야하는 넘버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대신 연습이나 커튼콜 때는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헤드윅'을 했던 리아, 영미 언니 보면서 귀동냥으로 '저런 스타일이면 되는구나' '저렇게 해볼까?' 정도로 알아서 배운것 같아요. 또 막상 무대에서 같이 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생긴 부분도 많고요" 

'리지'는 나하나와 유리아, 김려원, 홍서영, 제이민, 이영미, 최현선이 출연한다. 8명의 캐스트로 소박하지만 단단하게 꾸민 공연에 대해 최수진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함께하는 배우들 뿐 아니라, 무대의 넘버, 스태프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 다들 잘하는 배우분들이라 의지가 되는 것 같아요. '나만 잘하면 되겠다' 생각 되더라고요. 사적으로도 친하기 때문에 누구든 넷이서 무대에 서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새롭게 느껴지는 장점 같기도 하고요"

"다른 작품에서는 분명히 배우마다 호흡 차이가 있기도 했어요. 솔직히 트리플 캐스팅이면 특정 배우를 기다린 적도 있거든요. 근데 여기서는 신기하게 그런게 없어요. 이 사람이랑 하면 이게 재밌고, 저 사람이랑 하면 저게 좋다 생각돼요"

"이번엔 4명이서 화음을 쌓아서 하는 4중창이 많아요. 듀엣이면 한 사람만 보고 하지만 화음이라는게 나랑 남의 목소리 같이 들어야 하잖아요. 4개의 화음을 엄청 디테일하게 해야해서 감독님도 배우분들도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아요"

"사실 양주인 음악감독님이 허당기가 있으신데 절대음감인 천재적인 분이세요. 그래서 화음 연습 때 엄청 도움이 됐어요. 다른 배우분들도 마찬가지로 워낙 실력이 좋고, 같이 끝맺음할 때 화음이 잘 떨어지면 희열이 들어요. 또 음악감독님이 화음이 좋으면 피아노 치시면서도 엄지척을 해주시거든요. 그러면 무대 끝나고 배우들이랑 '오늘 엄지봤어?' 하면서 좋아하기도 해요"

최수진이 맡은 앨리스 러셀이라는 캐릭터는 리지 보든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에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리지와 애정을 나누기도 하고, 리지의 선택에 대한 입장을 고민하고 번복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소 애매하고 단박에 이해가는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수진도 그 점을 알고 동명의 영화 등을 참고하며 캐릭터 표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음을 밝혔다.

"영화를 많이 참고했어요. 영화에서는 하녀 브리짓 설리번이 리지와 러브라인인데 인물만 바뀌었지 정서적으로는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리지 입장을 많이 봤어요. 리지의 억압되는 환경에서 사랑이 표출되는 감정선을 알아야 상대가 어떻게 해야할지 보이기 때문이죠. 그게 하녀든 누구든, 리지가 사랑을 느끼는 순간의 요소들을 많이 캐치했어요"

"원래 대본하고 앨리스가 조금 달라요. 완벽하게 구축된 캐릭터라고 자신있게 말하긴 좀 어려워요. 유리아는 보라색 연기라고 하더라고요. 확실하지 않고 조금 애매한. 그래서 연습과정에서 아이디어도 많이 냈고, 캐릭터 방향도 연출님과 많이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뭔가를 바꿔서 하는게 아니라 정말 연기를 잘해서 연기로 모든 것을 관객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관객분들이 너무 잘 이해해주셔서 다행이었어요. 뻔한 조연이 아닌 것 같아 더 재밌었고요"

'리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젠더이슈를 겨냥한 여성서사라는 점이다. 극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차별받던 여성이 변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자연스레 여성 배우들이 주축이 됐고, 모든 캐스트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도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최근 흐름과 달리 최수진은 오히려 그런 것을 부각시키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신도 전했다. 

"'오펀스'라는 젠더작품도 해봤지만, 배우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접어야 이 끊임없는 투쟁이 빨리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성이라서 겪는 소재를 다룬다' '여자라서 센 역할을 할때 멋있다'를 느끼는게 탈피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과도기인 것 같아요"

"물론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여자끼리 해서 될까'하는 부담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자꾸 여자, 남자 나눠서 생각하는 단계를 벗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 안하려고 하고 실제로도 안한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한 사람 한 사람 나온다는 게 중요하지 여자 4명이 나온다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②에 이어집니다.

사진=싱글리스트DB,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