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3’에서 ‘갑툭튀’한 능력자인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준우승팀 라비던스의 고영열(27)은 데뷔 5년차다. 통성에서 묻어나는 아픔이, 바위같은 저음과 포효하는 고음의 간극을 메우는 한의 정서가 특출난 밀레니얼 소리꾼을 만났다.

예인들의 고장인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영열은 초등학교 6학년인 13세까지 수영을 했다. 국가대표 선수를 꿈꿨던 그는 폐활량을 늘리는 법을 찾다가 판소리를 하던 어머니에 이끌려 우리 가락의 길로 들어섰다. 수영을 했던 덕에 판소리를 연마하는데 놀라운 가속도가 붙었다. 그 맛에 이끌려 판소리 세계에 점점 깊숙이 발을 들여놨고,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판소리를 시작할 때 고법을 함께 배웠던 그는 워낙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 거문고, 꽹가리, 북, 장고를 섭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실에 피아노가 있길래 의자에 앉아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판소리를 하다 보니 연주 실력이 점차 늘었다. ‘팬텀싱어3’ 솔로 경연 당시 ‘키보드 치는 소리꾼’의 이색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동료인 테너 존노는 그를 가리켜 “진짜 음악인”이라고 평가했다.

“어렸을 땐 국악만 들었는데 스스로 갇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비틀스도 몰랐어요. 음악하는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 공감이 잘 안됐죠. 그러면서부터 다른 장르 음악도 많이 듣기 시작했어요.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부터 시작해서 항상 음악에 빠져 있었어요. 좋아하는 가수를 잡아놓고 알고리즘을 돌리거나 하는 식으로.”

그래서일까. 이채롭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은 영국의 천재 재즈 뮤지션 겸 월드뮤직 작곡가 제이콥 콜리어와 가나 태생의 영국 뮤지션 벤자민 클레멘타인이다. 20대인 콜리어는 다양한 악기 연주부터 작곡, 노래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이 블록버스터급이며 역량마저 탁월하다. 30대인 클레멘타인은 소울 음악을 하는 흑인 가수다.

"콜리어는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제 입장에서 음악적으로 배울 게 너무 많은 사람이고, 클레멘타인은 노래에 자기 이야기를 담아 불러서 저의 음악적 취지나 감성적인 부분과 잘 맞아서 좋아해요. 유튜브 영상을 찾아가며 발견한 뮤지션들이에요. 더욱 다양하고 특별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듯해요.(웃음)”

흔한 말로 “국악만 파고들어도 모자랄 판”에 외국 뮤지션과 음악을 꿰고 다니고, 키보드를 잡고 연주하는 그에 대한 국악계 ‘인싸’들의 시선이 고울 리만은 없었다.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대중음악의 비주류인 국악 안에서조차 그는 ‘비주류’였던 셈이다. 2014년 뜨거운 피가 들끓던 젊은 소리꾼 고영열에게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대학 재학 시절인 2014년 제34회 온나라 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부문 금상을 차지한 그가 12월 22인조 모던 오케스트라 ‘이스턴 모스트’에 싱어로 합류했다. 다른 장르 음악과의 첫 공식 조우였으며 창작활동의 시발점이었다.

서양 악기(클래식과 재즈)를 연주하는 단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이때의 경험과 지식을 자양분 삼아 이후 여러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게 됐으며 ‘팬텀싱어3’에서 신들린 듯한 크로스오버 무대를 창조했다. 현재의 고영열 밴드(기타·드럼·베이스·키보드·트럼펫) 다섯 멤버들도 여기 출신들이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2016년부터 기회가 생기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이 시작됐다. 에스닉 퓨전그룹 두번째달과 함께 KBS 2TV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고 이후 소리꾼 듀오 ‘김준수+고영열’로 자주 출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듬해 2월 국악소녀 송소희와 부른 ‘이별이래’에서는 피아노 반주와 발라드 가요와 판소리 ‘춘향가’를 오가는 반전 구성으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한이 짙게 밴 신세대 남녀 국악인의 청아함과 허스키 보이스 앙상블은 전율을 일으켰다.

“배움을 줬던 노래였어요. 많은 분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됐고 그 이후 이곳저곳에서 많은 공연을 할 수 있었죠. (김)준수 형님이랑 청와대, 국회에서도 노래를 불렀으니까요.”

지난해 고영열은 재즈 기타리스트 선배와 2인조 앙상블 카운드업을 결성, 해외공연을 진행했다. 5월 유럽, 9월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현지 청중과 호흡했다. 카운드업 정규앨범 수록곡을 위주로 즉흥 연주, 국악의 시나위, 민요를 들려줬다.

“국악의 가능성을 외치고 싶었고, 저의 가능성까지 발현하고 싶었죠. 다른 장르 뮤지션들과 함께 제가 앞으로 어떤 국악을 보여줄 것인지 서서히 고민하고 보여주려 했어요. 해답은 여전히 못 찾았지만요.”

‘팬텀싱어3’ 4중창 경연 당시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의 시를 바탕으로 한 창작가곡 ‘무서운 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무대다. 그는 “배움의 무대였다. 한국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역사를 담은 노래라 어느 누군가에겐 가슴으로 와닿았을 테고, 또 누군가에겐 역사가 궁금해질 수 있는 무대였을 것이다. 나 자신도 그랬고 한국인으로서 각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되짚었다.

그가 몸담은 라비던스 4명이 누구도 걷지 않는 음악 여정을 잘 이뤄냈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고영열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만든 작품 중에서 ‘무서운 시간’처럼 청자에게 영감을 주고 심금을 울리는 곡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국악의 방향이 대중과 공명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고영열은 ‘소리꾼’으로 불리길 원한다.

 

◆ 에필로그

첫 광고출연의 기쁨을 맛봤다. 최근 코로나19로 심화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지친 이들을 응원하고자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마음 품앗이’ 편에 출연해 장기인 호쾌한 소리로 화합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올 가을 방영될 KBS 1TV 청산리대첩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에서는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충남 홍성 생가와 동상오거리, 바닷가를 찾아 프레젠테이션 촬영을 마쳤다. 지난 8월 31일 해금연주자 성연영과 함께 현지를 찾아 ‘흥타령’ ‘새야 새야’와 올해 3월 발표한 자작곡 ‘이룰 수 없는’을 불렀다.

사진= 최은희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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