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1987년생 하준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데뷔한지 3년차로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3년 동안 무한한 성장을 했다. 단역, 조연부터 시작해 스크린 주연까지. 승승장구하면서도 하준은 과거를 잊지 않았다. 그 역시 무명 MC 경만 같은 시절이 있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자 동생, 오빠였다

“저는 형, 동생이 있는데 맏아들 경만을 연기하면서 형의 입장을 많이 느꼈어요. 영화에서 동생 경미(소주연)가 장례식장 자리를 비운 경만을 계속 찾지만 경만은 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행사 MC를 뛰고 그 이야기를 하지 않죠. 저도 현실에서 같은 상황이라면 제 동생에게 경만처럼 말 못할 것 같아요. 배우 생활하면서 애로사항을 가족들한테 깊게 얘기하지 않아요. 제가 진짜 힘들면 이야기하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었죠. 한번은 부모님께서 스태프 밥 사주시러 현장에 오셨어요. 마을 잔칫날 장면 촬영할 때였는데 그때 기분이 묘했어요. 멀리서 흐뭇하게 보시는데 말로 설명을 못할 정도로 묘하고 뭉클했어요.”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왔는데 동기들이 100명 정도 돼요. 연기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 현재 몇 명 없어요. 당시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다음달 전화비, 월세, 가스비 등이 늘 걱정이었죠. 경만처럼 무대 크루, 행사 아르바이트 단타로 해서 페이 정산이 안 된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일은 대부분 청춘들이 겪어봤을 거예요. 배우로서 이름을 점점 알리면서 ‘잔칫날’ 촬영 들어가기 전에 고향에 내려가서 아버지께 식사를 대접해드렸는데 멋쩍어 하시면서도 좋아해주셨어요. 한편으론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죠.”

올해 하준은 ‘잔칫날’ 이외에도 OCN 드라마 ‘미씽: 그들이 있었다”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아스달 연대기’ ‘블랙독’부터 올해 시네마틱드라마 ‘SF8’의 ‘블링크’까지 하준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잔칫날’에서 소주연과 케미를 선보였듯 하준은 어떤 현장에서도 배우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무언가 영감을 얻고 배울 수 있으니까.

“얼마전에도 ‘미씽’ 팀끼리 식사를 했어요. ‘미씽’ 촬영을 하며 허준호 선배님이 큰 도움을 주셨죠. 잔잔함 속에서 많은 걸 내려놓고 비우시는 모습으로 후배들한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셨어요. 저한테도 ‘다 내려놓고 비워’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제가 선배님께 많이 다가갔죠. 애교를 많이 부렸거든요.(웃음) 드라마 끝나고 후배들한테 직언해주시기 쉽지 않은데 계속 연기적인 부분을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한텐 너무나 많은 롤모델이 있어요. 메릴 스트립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존경하고. 딱 한 명만 고르긴 어려워요. 우연히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명을 주는 분이 있으면 그분이 롤모델이 되기도 하죠. 좋은 영향들이 합쳐져서 제가 지향하는 방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이의 제약도 없죠. 어리다고 해서 제가 배울 게 없는 건 아니니까요.”

하준을 대중에게 알린 ‘범죄도시’가 2편으로 돌아온다. 코로나 여파로 해외 촬영이 중단된 상황이다. 그는 지난 ‘잔칫날’ 언론배급시사회 간담회 취소에 죄송하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당시 영화 관계자가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하준은 자택으로 이동해 격리를 해야했다. “이런 시국 속에 개봉할 수 있어 감사”라는 그는 배우로서 이보다 더 큰 고통을 맛봤고 극복해나갔다. 매년 한발짝 나아가는 하준이 내년엔 또 어떤 성장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범죄도시2’ 국내 분량은 끝났고 해외 분량은 코로나 때문에 작전회의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범죄도시’ 조감독님께서 2편 감독님으로 입봉하셔서 감회가 새로웠어요. 시리즈물에서 인물들이 성장하잖아요. 제 캐릭터를 귀엽게 봐주신 분들에게 감사해요. 스태프도 1편에서 같이 했던 분들이 많아 편하게 찍은 것 같아요. 코로나 시국에 촬영하기가 어렵거든요. 어느 촬영 현장을 가도 그래요. 그런 와중에 ‘범죄도시2’는 손발이 잘 맞는 전우들끼리 만나 난관들을 다 헤쳐 나간 것 같아요. 지금 난관도 잘 헤쳐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 고통스러운 적이 참 많았는데 지나고 보면 이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와요. 배우가 작품에 들어가서 그 인물이 되기까지 접근하는 과정이 늘 순탄하지 않았어요. 엄살 같겠지만 뼈와 살을 깎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아파야 성장하는 거니까. 지금 갑자기 드는 생각은 지난 3년간 저한테 ‘잘했다’ ‘기특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동안 저 스스로를 채찍질 했거든요. 이제 배우 인생의 한 단계가 지나갔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려고 해요.”

사진=트리플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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