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를 다룬 OCN 드라마 ‘구해줘’는 올해 방영한 드라마 중 유독 충격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사이다'같은 결말로 맺을 법도 한데, 답답하지만 현실적인 마무리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극중 사이비 종교 ‘구선원’에 감금된 소녀 상미 역으로 열연한 서예지(27)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연기를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들었고,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제일 따뜻한 위로를 느꼈다던 그녀를 27일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구해줘’가 드디어 결말을 맞이했다.

“‘구해줘’가 정말 생각보다 이슈가 많이 됐다. 시청자분들이 상미의 슬픔을 같이 느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결말에 대해선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백정기(조성하)의 죽음으로써 오빠의 한이 풀린 것 같긴 해도, 아버지까지는 구출하지 못했다는 그 안타까움에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사이비’라는 민감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선택한 건 어떤 이유인가.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사회적 고발이 불가피하지 않나. 이제껏 ‘구해줘’처럼 사이비 종교를 심도 있게 다룬 드라마가 과연 있을까 싶었고, 굉장히 신선하게 와 닿았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면 사람들이 비슷한 일에 휘말리는 일이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돼서 작품을 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건, 바로 상미 캐릭터였다.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고 매회 눈물을 흘리지만, 굉장히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혹시 과거 사이비 종교와의 인연이 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길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해줬다. 나중에는 종교 얘기를 하더라. 아, 사이비구나 싶었다. 그 사람에게 저 멀리 크게 세워진 십자가를 가리키며 ‘저게 보이느냐’고 질문했다. 그리고는 ‘내가 지금 저 교회를 다니는데, 지금 나랑 같이 저기에 가자. 내가 보는 바이블과 댁들이 보는 바이블이 다르지 않나. 저 교회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당신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당당히 말해봐라'라고 말했다. 지금의 나라면 그냥 죄송하다고 말하며 지나갈 테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당찼던 것 같다.”

 

‘아는 형님’에서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라고 했는데, 이번 드라마를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완벽히 상미가 되기 위해 촬영 전부터 혼자 갇혀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가사가 없는 경음악을 많이 들었고, 그러면서 상미네 가족을 많이 떠올렸다. 그러다보니 마음 가득 우울한 감정을 가진 채 촬영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첫 촬영날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여배우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수한 상미의 모습이 드라마의 현실감에 제대로 일조했다.

“감독님은 서예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원하셨다. 있는 그대로의 얼굴,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 나도 그냥 나 자신이 상미에 이입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스타일링은 모두 감독님이 만드셨다. 상미는 유독 치마 길이도 길었고, 바지도 늘 나풀거리는 것만 입었다. 머리 길이 역시 정해주셨고 메이크업 또한 안 하게끔 권유하셨다. 나로서도 립밤과 선크림만 바른 채 촬영에 들어간 건 ‘구해줘’가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래도 여배우인데, 이대로 방송이 나가도 되는 건가 걱정이 들었다(웃음). 근데 오히려 상미가 좀 더 안타까워 보이고 아파 보이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 자체가 암울한 현실을 그리다 보니, 촬영 현장도 축축 처지진 않았나.

“처음엔 그럴 것 같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선배님들끼리도 대화를 많이 나누시더라. 조성하, 윤유선 선배님은 촬영을 안 할 때도 우울해 하고 있는 내게 와서 말도 걸어주시고 위로도 건네주셨다. 두 분은 정말, 작품 속 캐릭터와는 상반된 분들이었다.”

 

시청자들도 드라마를 보며 감정적으로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직접 연기를 하는 배우의 입장은 더 고됐을 것 같다.

“딜레마가 많이 왔다. 우는 연기를 많이 해서 눈에 물사마귀가 생기는 건 그냥 차치하더라도, 촬영을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에도 서예지가 아닌 상미로 돌아가게 되더라. 스스로도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겹치는 거다. 집에서도 소파에 앉아 멍하니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너무 서러워서 운 적이 있다. 하필 또 기찻길을 기어가는 장면을 찍느라 몸이 멍투성이일 때였다. 그때, 상미가 진짜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참 신기한 게 시청자들한테 위로 받은 작품은 ‘구해줘’가 처음이다. 어떤 시청자분이 ‘나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렇게 힘든데, 서예지씨는 후유증이 있진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쓴 댓글을 봤다. 이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힘들었지만 그런 위로들이 새로웠고, 고마움 때문에 견뎌졌다.

4개월간 우울한 상태였다고 들었다.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그 감정의 잔여물이 한순간 싹 가시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길게 여운이 남는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다. 캐릭터에서 확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그 감정을 끌고 오고 있지만… 굳이 상미 캐릭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이대로 휴식을 취하다가, 차기작에서 만난 캐릭터에 이입하는 게 상미를 떨쳐낼 방법 같다. 아마 상미는 내 안에 오래 남아있을 거다.”

 

문제의 '방언' 장면은 며칠 동안 인기 동영상에 등극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사실 정말 예민한 장면이라 부담스러웠다. ‘구해줘’ 대본이 길었는데, 그 부분만큼은 ‘상미가 기도문을 외우고 방언을 한다’라고 딱 한 줄 써 있었다. 그 부분만큼은 ‘상미가 기도문을 외우고 방언을 한다’라고 딱 한 줄 써 있었다. 작가님도 아마 함부로 방언을 대본으로 쓸 수가 없어 배우에게 맡기셨을 거다. 나는 백정기나 아버지의 방언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근데 진짜 방언을 사용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괜히 상처받으시진 않을까 걱정되더라. 그리고 그런 상미를 바라보는 엄마의 감정까지 받아가며 연기를 해야 하니까, 여러모로 무거운 장면이었다.”

2013년 시트콤 ‘감자별’로 연기에 입성,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다.

“신인 때는 작품 선택을 하거나 캐릭터를 구상할 때마다 정신이 없었다. 뭐가 뭔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만 바라보며 쉼 없이 달렸던 것 같다. 지금은 나에게 맞는 색깔, 내 목소리와 어울릴만한 맞춤옷 같은 캐릭터를 찾는다. 무게감 있는 작품과는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밝은 캐릭터를 할 땐 다양한 면모를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다. ‘구해줘’의 상미는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한 캐릭터였다.”

스페인 유학, 성교육 자격증 등 남다른 스펙의 보유자다. 요술풍선 자격증까지 땄다던데, 또 다른 이색적인 도전을 꿈꾸고 있진 않나.

“지금은 본업이 배우다 보니까 이색적인 활동을 욕심내진 않는다. 사실 요술풍선 자격증은 평소 만드는 걸 좋아하니, 좀더 전문적으로 배워 봉사하면 어떨까 싶어 땄던 거다. 그땐 풍선으로 푸들만 열 마리를 만들어놓고, 키우고 있는 강아지들의 밥그릇 주변에 세워놨었다. 강아지들이 막 놀라더라(웃음). 풍선들이 자기 밥을 뺏어먹는 줄 알았나보다.

 

‘아는형님’에서의 삐걱삐걱 댄스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발레를 하는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뻣뻣함(?)이었다.

“많은 분들이 제가 몸매 관리를 위해 발레를 배웠다고 오해하고 계시더라. 사실 발레는 시트콤 ‘감자별’에서의 캐릭터를 위해 배운 거였지 전문적으로 한 건 아니었다. 원체 몸이 유연하지도 못하다(웃음). ‘아는형님’에서 보여준 춤은 진짜 하루 스케줄을 빼고 연습장에 가서 배운 거다. 그날 배우는 과정에서 찍은 모니터 영상 속의 내 춤이랑 방송에 나온 춤이랑 똑같더라(웃음).”

처음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집안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부모님으로부터 ‘배우 서예지’로 인정받았나.

“부모님은 내가 온전하게 배우로 살아가는 걸 옆에서 지켜봐주고 계신다. 부모님께서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전부 본 드라마는 ‘구해줘’가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원체 부모님이 엄하셔서 나를 상남자처럼 키우려고 하시는 편이었다. 그동안 격려의 말을 해주신 적이 별로 없는데, 이번엔 정말 고생했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인생 드라마 ‘구해줘’가 ‘新스릴러퀸’ 타이틀을 가져다줬다.

“정말 모든 배우가 가질 순 없는 타이틀 아닌가. 내가 보여드린 스릴러적인 면모를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만약에 또 스릴러를 하게 된다면 약간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하다(웃음). 사실 그 타이틀을 유지하고, 밀고 나가자는 욕심 같은 건 그다지 없다. 그저 점점 새로운 캐릭터를 해나가며 다양한 호평을 듣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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