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곳 가운데 하나가 고궁이다. 도심 이곳저곳에 고풍스러운 궁궐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서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궁이 젊은 세대에게 ‘힙’한(새롭고 개성 강한) 장소로 자리매김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호젓하게 산책하며 우리 유산을 공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치와 멋이 가득한 곳에서 흔치 않은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무엇보다 낮에 방문해도 좋고, 밤에 찾으면 또 다른 감상에 젖어들게 된다. 덕수궁과 창덕궁의 문을 연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가 공동주최하는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전(11월26일까지)은 예술작품과 함께 감상하는 고궁의 풍경이 더욱 특별하다. 올해 대한제국 선포(1897년) 120주년을 맞아 9명의 미술작가들이 대한제국 시기를 모티프로 덕수궁이란 역사적 공간에 조형적 접근을 시도한 전시다. 유서 깊은 7개의 한국 전통 전각마다 작가들이 사진·드로잉·설치·영상·사운드 등 현대 미술작품을 설치해 소개한다.

 

 

석어당에서 상영하는 권민호 작가의 ‘시작점의 풍경’은 고종 황제 즉위 후 대한제국의 중심이 된 덕수궁 일대를 다뤘다. 도시를 그려나가는 연필 선이 덕수궁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덕홍전에 설치된 임수식 사진작가의 ‘책가도389’는 고종 황제의 책장을 보여준다. 이는 고종 황제의 집무실을 상상한 작가의 구상에서 시작했다.

 

 

그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에는 오재우 작가의 VR(가상현실) 작품 ‘몽중몽’이 소개된다. 관람객은 행각 내부에 누워 고종황제가 품었던 꿈의 이미지를 VR로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전각 앞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설사들이 작품을 설명한다. 매일 오후 1시, 3시 5시 중화전 행각 앞에서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가 열리며 주말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전해설 프로그램이 알토란 같다.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창덕궁 달빛기행’은 11월5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창덕궁에서 야간에 진행된다. 티켓값이 3만원에 이르는데도 꾸준히 인기다. 매회 100명으로 참여인원을 제한해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예매를 한 참가자들은 20명씩 5개조로 나뉘어 창덕궁에서 주는 청사초롱을 들고 2~3시간가량 해설사와 함께 조선왕실의 희로애락을 품은 궁궐을 걷는다.

한국 전통건축 및 조경의 정수로 꼽히는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빼어난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사랑받고 있다.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 인정전과 낙선재에서 창덕궁의 저녁을 감상하게 된다. 낙선재 후원 언덕에 자리한 상량정이 가까워지면 대금 연주자의 선율이 가을 정취를 배가한다.

 

 

하이라이트는 네모반듯한 연못 부용지 산책이다. 열십자 형태의 건물 부용정, 마지막 코스인 연꽃으로 둘러싸인 애련정을 걸으며 기행을 마무리짓게 된다. 야간개장 때, 창덕궁은 다른 궁궐보다 조도가 낮은 편이라 은은하며 중간중간 국악 연주는 듣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사진= 서울시공식관광정보 웹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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