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의 페르소나. 이 한 마디 말로 연우진을 설명할 수 있다. 31일 개봉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우진은 ‘더 테이블’에 이어 다시 한번 김종관 감독을 만났다. “저한테 좋은 선물을 주신 거 같아서 마음이 빚이 느껴졌어요”라는 연우진은 지난 몇 년 동안 김종관 세계에 스며들었다. 영화 속 소설가 창석이 마치 연우진인 것처럼.

‘조제’ ‘더 테이블’의 김종관 감독 신작이자 연우진, 김상호, 이지은(아이유), 이주영, 윤혜리가 만난 ‘아무도 없는 곳’은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누구나 있지만 아무도 없는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쌓아가는 중인 연우진이 창석으로 분했다. 그는 ‘더 테이블’에 이어 ‘아무도 없는 곳’에 참여하며 김종관 감독의 페르소나임을 입증했다.

“사실 김종관 감독님 시나리오는 여백도 많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순간 캐치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감독님과 함께 하는 순간이 너무 좋고 그 건조한 글씨가 감독님의 연출로 영상화됐을 때 어떻게 나올지 기대감이 컸어요. 감독님이 선뜻 출연을 제안해주셨을 때 고민도 없이 수락했어요. 이번 영화는 감독님이 그전에 해왔던 것과 사뭇 다른 지점들이 있었죠. 나에게 정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어요. 작은 위로를 받은 작품이어서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부분이 풍부하게 다가왔어요.”

“창석을 준비하면서 가진 마음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노력했어요. 창석이 느꼈던 감정, 나아감 등을 관객으로서도 와닿았고 창석의 소설을 한편 읽은 기분이었죠. 또 다른 현실에서 살고자하는 힘을 받은 것 같아요. 창석을 준비하면서 그가 만나는 네 명의 이야기들을 듣는 사람으로서 무미건조하고 색깔 없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창석이 주가 되지만 그의 소설 안에 네 명의 소설이 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들의 이야기가 빛날 수 있도록 듣는 입장에서 도화지같은 느낌의 캐릭터를 잡아나갔어요. 연기를 하다보니 제가 연우진인지 창석인지 헷갈렸어요.”

연우진은 김종관 감독의 찐팬 아니 그와 항상 작업하고 싶어하는 배우처럼 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감독님’이란 말로 시작해 ‘감사하다’로 문장을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연우진에게 김종관 감독은 특별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감독님의 마음을 꿰뚫지 못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글을 쓰시는지 항상 궁금해요. 작업실 놀러 가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이번 영화는 그전과의 작업 방식은 비슷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톤 자체가 달랐기에 어떻게 풀어내실 건지 개인적으로 물어보는 게 실례가 될 것 같았죠. 하지만 촬영 들어가고 나서 감독님이 무얼 원하고 담아내시려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존경하는 감독님이시지만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

“김종관 감독님의 고민, 가치관들, 저도 궁금하고 앞으로도 알고 싶어요. 감독과 배우 그 이상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아니시겠지만요.(웃음)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의 그림자를 지워줄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감독님의 다음 작품이 저 또한 궁금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창석은 네 사람을 만나 각기 다른 네 개의 이야기를 전한다. 창석은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도 맡는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묵묵하게 창석의 감정을 드러내는 연우진은 ‘아무도 없는 곳’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에겐 ‘아무도 없는 곳’ 매 순간이 특별했다.

“김상호 선배님과 촬영 전 리딩을 한번 했지만 쑥스러워서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어요. 현장에서 선배님의 눈을 처음 마주쳤던 것 같아요. 그 눈을 통해 선배님이 진솔한 연기를 하는데 제 감정이 올라와서 많이 눌렀어요. 행여나 선배님 연기를 보면서 창석이 아닌 저의 감정이 드러날까 봐요.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데 힘드셨을 거예요. 대사량이 많았거든요. 다양한 컷으로 촬영했지만 다 처음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순간 만큼은 창석의 진짜 반응이 나온 것 같아 선배님의 연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이지은 배우와 함께 한 첫 스토리를 다시 되새겨보면, 지하철 환승로에서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이지은 배우의 시선이 모든 걸 다 말하는 것처럼 너무 좋았어요. 이 에피소드는 인생의 시간에 대한 것이었어요. 이지은 배우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미영 그 자체였어요. 저보다 어리지만 아우라가 엄청난 큰 산이자 강 같았죠. 지은 배우의 연기에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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