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혼밥도전기를 쓰기 위해 2주를 참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시리즈는 격주 업데이트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혼밥 플레이스는 바로 명동. 1인 메뉴에 특화된 일본가정식 '돈돈'이 이번 목적지였다. 복잡한 명동거리를 뚫고 들어가 엠플라자 주변에 위치한 '돈돈'을 힘겹게 찾았다. 땀을 삐질대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서빙 점원들은 물론 오픈키친에서 요리를 하고있던 주방 직원들의 한데모인 우렁찬 목소리 때문이었다.

"이랏샤이마쉐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서오세요(いらっしゃいませ)'라는 뜻. 활기찬 그들의 인사에 웃음이 나면서도 쓸데없이 주목받게 된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긴 하다만… 굉장히 부끄러우므로 혼자 온 손님에겐 그런 인사쯤은 접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내 받은 2인석에 재빨리 착석해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마치 일본의 선술집같은 느낌을 간직한 목조 인테리어에 눈길이 자연스럽게 달라붙었다. 니뽄삘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게 흘러나오는 노래는 죄다 요즘 유행인 팝송뿐. 사람 없이 한산했지만, 나는 소심병 말기 증상이 발동하는 탓에 DSLR을 못 꺼내고 쭈뼛대고만 있었다. 근데 내 바로 뒷자리에 나처럼 혼자 온 손님이 한 명 더 있는 거다. 그걸 알게된 순간 갑자기 용기가 솟아나서 보급형 DSLR을 들고 전문 포토그래퍼마냥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너무 더워서 손을 팔랑거리며 부채질하고 있는데 점원이 물을 가져다 줬다. 윗부분을 누르면 물이 나오는 펌프 형식의, 일본에서 자주 본 물병이었다. 그런데 물이 또 너무 미지근한 거다. 짜증이 밀려왔다. 이 더운 날에 이게 뭐하는 짓이지? 요즘 식당들은 왜 시원한 물을 구비해놓지 않는 건가. 그것도 내가 혼밥 하고자 작정하고 찾아간 곳만 그런다는게 아이러니다. 혼자 온 손님에게 미지근한 물을 주는 관행이 있는 것도 아닐테고…

…그냥 말해본 건데, 진짜일까봐 문득 소름이 돋아난다.

 

시원한 물 좀 갖다달라고 하려 했으나, 문득 콜라가 마시고 싶어진 나는 콜라 한잔을 달라고 했다. 갖다준 콜라는 2000원이 아깝지 않을만큼 시원했지만, 유리컵은 또 손바닥만 해서 난감했다. 나는 이날 이 조그마한 컵에 음료수를 일곱번에 걸쳐 따라야 했다. 얼음 네개만으로도 꽉 찬 컵에 입을 대고 마실 때마다 얼음이 입술 위로 박치기를 했다.

 

주문한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음식은 금방 나왔다. 총 18개나 되는 주메뉴에서 내가 택한 건 가장 비싼 축에 끼는 화로구이 정식. 가격은 1만 5000원. 프라임급 미국산 소고기 10p를 미니미한 1인 화로에 구워먹을 수 있으며, 갖가지 반찬들이 따라나온다. 반찬으론 미소시루(된장국), 명란젓, 일본식 계란말이, 파스타, 할라피뇨&단무지 등으로 알차게 구성된다. 솔직히 좁디 좁은 테이블 위 화로구이 정식을 처음 맞닥트렸을 때, 나는 미지근한 물로 인해 치밀어올랐던 짜증이 한순간에 팍 식는 걸 느꼈다. 이 무슨 아름다운… 두 말 않고 화로에 고기부터 굽기 시작했다.

 

화로열이 닿은 얼굴이 뜨거웠으나 감수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1인 화로는 사랑이니까. 숯불을 아끼지 않고 채워넣은 이 귀여운 화로에 꼴랑 나온 고기 열 점을 열심히도 구웠다. 레몬은 뿌리지 않았다. 그런 불필요한 식재료 따위, 산뜻하게 건너뛰는 것이 좋다. 숯불이 많아서 고기는 타닥타닥 금방 구워졌다. 고기 굽는데 일가견이 있는 나는 적당히 익혀낸 고기를 같이 나온 양념 소스에 푹 담가 먹었다. 그걸 입안에 넣으면 천국이었다. 갈비살이라 더욱 부드러웠고 질기도록 구워대도 맛있었다.

 

식사량이 많은 사람에겐 좀 부족할 수도 있겠다. 나로서는 처음엔 양이 좀 적은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먹고나니 적당한 편이었다. 코딱지만큼 나와서 욕했던 명란젓, 계란말이, 파스타 모두 식사를 마치고나니 딱 더는 먹고싶지 않을만큼만 준비된 듯 했다. 명란젓은 짜지 않고 맛있었으며, 계란말이는 달달했지만 폭신하진 않았다. 파스타는 담백해서 좋은 이 1인 메뉴 중 유일하게 쌩뚱맞은 맛을 자랑했다. 밥은 고슬고슬했지만 갓 지어진 밥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된장국은 편의점에서 파는 800원짜리 즉석 된장국보다도 밍숭맹숭했다. 결국 좋은 건 고기뿐인가.

그러면 안되는 걸 알지만, 밥을 다 먹고난 후 콜라를 홀짝이던 나는 멀지 않은 테이블에 앉은 두 손님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한 사람이 시킨 메뉴는 일찍 나왔는데, 다른 한 사람이 시킨 메뉴는 그로부터 1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듯 했다. 결국 일찍 나온 메뉴를 먹고있던 쪽이 음식을 기다리던 친구에게 몇번 먹여주고 있었다. 손님도 별로 없었건만 메뉴별로 조리시간 차이가 극심한가 보군.

 

텅텅 비어있던 웨이팅석을 찍은 사진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명동. 식사 마친 시간 저녁 일곱시. 사람이 붐빌만도 한데 끝까지 한산해준 가게 덕에 부담없는 혼밥이었다.

맛 ★★★★

고기는 맛있다만, 몇가지 반찬이 실망적. 메인음식에 주력하는 게 나쁘진 않다만 밍밍한 미소시루는 너무했다.

서비스 ★★★

방문하기 전 전화 받았던 점원도 친절했고, 음식 갖다준 점원도 친절했으나, 마지막에 계산해준 직원은 어떠한 멘트도 없이 체크카드만 긁어서 민망. 물론 가게를 나설 때에도 잘 가라는 인사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사보다도 더 마음에 걸린 물. 그날 최고 기온 31도였다고요…

1인 특화성 ★★★

애초에 1인 식당은 아니다만 자리는 4인석이 대부분이고 2인석도 얼마 없어 혼자 찾기에는 좀 부담. 하지만 혼자서도 알차게 먹을 수 있는 1인 메뉴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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