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펫팸족, 환경 보호 운동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홍보 마케팅 일을 하는 박서정(37)의 현재 삶은 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그는 원래 시인이 되려고 했다. 졸업 후 취직해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제중원' 웹드라마 '도대체 무슨 일이야' '88번지' 영화 '커피 메이트' 등을 홍보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돈도 되지 않는 환경 보호 운동 단체 '그린볼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예대 재수를 준비하며 무릎까지 쌓인 눈을 밟다가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고요를 처음 깨달았다. 샤워하듯 무언가가 씻겨 나가며 마음이 깨끗해지고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았지만 그린볼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일 때문이었다.

"2011년도에 드라마 기획이랑 제작을 나름 열심히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표현하기 힘든 배신감과 좌절을 느꼈다. 부끄럽기도 했다. 집 밖에 나가기도 싫고 울면서 '루저'처럼 있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을 보고 의지를 찾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구나. 모두 '초록 초록'하게,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면 어떨까 싶었다. 물질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다. 하지만 자연은 고갈을 주지 않는다. 2016년 8월에 지인 2명을 설득해 단체를 결성했다."

그 후 '입지 않는 청바지 업사이클'과 '그린볼 아트 콜라보 전시회' 등 환경과 유기견을 생각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금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린볼 캠페인의 첫발은 조금 소박했다.

"서울슈퍼드림콘서트에서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환경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수건을 안 쓴다. 심지어 요즘엔 물티슈까지 나왔다. 손수건을 일단 나눠주자 싶었다. 콘서트에서 선착순 천 명에게 손수건을 전달했다. 콘서트 측에서 우리가 직접 그 일을 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 애들(아르바이트생) 보낼 줄 알았단다. 애들이 어딨나.(웃음) 그때 안 했으면 지금까지 못 했을 거다."

 

 

그린볼 캠페인은 연말을 맞이해 유기견 돕기에 다시 한번 나섰다. '2018 복받개 프로젝트'로 펫토이와 캘린더를 텀블벅에서 판매해 수익금으로 유기견을 위한 단편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박서정은 2013년 순천만 세계동물영화제 홍보 일을 하면서 유기견과 길고양이 문제를 인지하게 됐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반려견 '부들이'를 만났다.

"한 개가 10일 안에 입양되지 못하면 죽게 된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쇼킹'했다. 파양을 두 번 당해 갈 데가 없어서 보호소에 갈 처지였다. 지인을 통해서 그 아이를 입양했다. 부모님이 지리산 쪽에 마당이 있는 집에 사셔서, 입양한 후 부모님께 맡겼다. 부모님이 서울로 다시 이사 오셔야 해서, 올해 1월에 부들이를 데려왔다."

박서정은 2010년부터 혼자 사는 1인가구로 지내고 있다. 싱글족으로 오래 살다 갑자기 인생에 끼어든 낯선 생명체를 처음부터 곱게 보진 않았다.

"너무 싫더라. 혼자 사는 거에 너무 익숙해진 상태였다. 내 공간에 뭔가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싫었다. 애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쫓아다닌다. 밥도 잘 안 먹고, 자꾸 나가고 싶어 했다. 무는 버릇이 있어서 무섭기도 했다. 그러다 유기견 캠페인을 하면서, 부들이가 없었다면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겠구나 싶었다. 많이 배웠다. 부들이는 내가 입양했지만 나에게 공부를 시키는 존재다. 지금은 항상 함께한다. 너무 예쁘고 어디서 이런 게 왔나 싶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지만, 여전히 많은 개들이 버려진다. 펫팸족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을 물었다.

"내가 외롭지 않자고 입양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동물들도 다 안다. 저 사람과 내가 같이 살아야 하는 팀이 됐다는 걸, 저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걸 다 느낀다. 시간이 필요할 뿐, 교감할 수 있는 게 있다. 처음 2년까지가 힘들다. 그때는 개가 장난기도 많고 활발하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숙고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박서정은 싱글족이 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해 대찬성의 뜻을 표했다.

"삶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반려견이다. 처음엔 당연히 싫다. 혼자 살다보면 누군가를 위해 뭘 하는 게 싫어진다. 나 혼자 너무 좋은데 왜 개의 먹거리를 걱정하고 이발시키고 산책시켜야 하나 싶다. 그런데, 누군가를 위한 희생 자체가 사라지면 혼자 살아도 슬플 것 같다. 가정이 있는 친구들이 대단한 게 희생과 배려를 실천하잖나. 혼자 살면서 그 최소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반려견이다."

 

 

싱글족 생활 8년 차. 그에게 싱글 라이프에 필요한 세 가지를 묻자 '여행, 일, 친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과 돈은 생계와 직결되니까 당연히 필요하다. 여행도 좋다. 재작년부터 왜 결혼하는지 알겠더라. 외롭다. 여행하면서 혼자 사는 외로움을 극복했다. 새로운 걸 보고 그걸 습득하다 보면 외로울 겨를이 없다. 또, 일에 욕심이 많은 여자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은 자주 만나진 못해도 만나면 힘이 된다."

비혼이 트렌드다. 박서정은 남자가 있으면 편하고 외롭지 않다고 결혼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고 답하면서도 비혼 트렌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돌연변이 괴물이었을 거다. 나이 많은 사촌들이 많은데, 서른 넘으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마흔 넘으면 아줌마라고 한다. 근데 난 나이만 먹었을 뿐 똑같다. 결혼해서 사는 친구들 보면 가정에서 주는 안정감이 있구나 느끼긴 한다. 난 내 욕심 때문에, 성향 때문에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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