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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①

 

Prologue

봄이 왔다. 사실 꽤 예전에 왔다. 심지어 이미 끝나간다. 뒤늦게 왜 이제서야 봄 이야기를 할까? 여태까지 별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이번 봄은 나에게 겨울보다 더 우울한 계절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만날 수 없었다.

주변이 화사해지고 풍성해질수록 오히려 시궁창 같은 내 인생이 더 비참해 보였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그래서 의외로 봄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2016년 봄. 그 계절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서 그 동안 느낀 몇몇 찌질한 감정들을 이제 정리해본다.

 

지하철에서 본 남자

지하철 열차 안에서 고개를 돌리다가 가까운 곳에 서있는 한 남자를 봤다. 나이는 아마 나와 비슷한 듯. 그런데 키는 나보다 십 센티는 더 큰 것 같다. 자신감 있게 앞머리를 넘기고 잘생긴 이마와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앞머리와 이마의 경계선이 분명하고 머리털이 적당히 풍성하며 힘이 있다. 콧날은 곧게 뻗었고 당당하게 허공을 찌르고 있다. 따로 놓고 봐도 잘생긴 이목구비가 얼굴 위에 균형 있게 잡혀있었다.

 

그 남자를 한참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남자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복을 입었을 때도 멋있었겠지. 여자들에게 인기 있던 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아침에 씻을 때 혼자 거울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잘생겼다는 사실에 만족했겠지? 물론 지금도 인기가 많을 거다.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열차 안에서도 적지 않은 여자들이 저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린 후 친구를 만나면 지하철에서 봤던 그 잘생긴 남자에 대해서 말할지도 모른다. 좆나 잘생겼다면서 연예인 누굴 닮았다면서 즐겁게 말할지도 모른다. 유리창에 내 얼굴을 비춰본다. 갑자기 날이 더워지는 것 같다. 저 남자가 부럽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부러운 건 앞머리와 이마의 뚜렷한 경계선이다.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할 일 없는 평일. 낮에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뭘 할까 하다가 혼자 영화관에 들어간다. 저녁이나 주말엔 그렇게 북적대더니 평일 낮에는 이렇게 한산할 수가 없다.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기엔 딱 좋다. 갑자기 영화관에서 영화가 정말 보고 싶어졌다. 조그만 포스터 종이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조금 흥미가 생기는 영화의 포스터는 앞뒤로 자세히 본다.

이 영화를 볼까. 확실하진 않지만 괜찮을 것 같다. 그 순간 고민이 생긴다. 영화를 보려면 만 원을 써야 한다. 갑자기 돈이 아깝다. 영화는 보고 싶은데 만 원은 쓰기 싫다. 혼자 고개를 가로젓고 조용히 포스터를 다시 제자리에 꽂아 넣는다. 이제 합리화를 한다.

영화관에서 조용하게 영화를 보기 좋은 날이긴 하지만 굳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는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다운받아서 볼 수도 있다. 만 원이면 좋은 옛 영화 여덟 아홉 편 정도는 볼 수 있는 돈이다. 이게 나에겐 훨씬 지혜로운 소비생활이다. 집에나 가자.

 

그리고 별 생각 없이 영화관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시발, 뭐’라는 글자가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응? 잘못 봤나? 믿을 수 없어서 다시 그 글자를 봤다. 다시 보니 그 글자는 ‘시빌 워’ 였다. 음… 내가 심사가 좀 꼬인 사람인가? 시발, 뭐.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잖아. 기분에 따라선.

 

출처= http://magazinewoom.com/?p=1611

 

신형섭  chacks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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