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가 사랑하는 배우 심은경이 돌아왔다. 그것도 두 작품 연속이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신작 ‘염력’(1월 31일 개봉)과 3년의 기다림 끝에 개봉을 앞둔 ‘궁합’으로 극장가를 연달아 찾으며 2018년의 초입을 알차게 채운다.

‘염력’이 개봉하기 전인 지난달 2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꼭 해보고 싶었던 블랙코미디를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시도할 수 있어 기뻤다”라며 기승전 연상호를 연호했다. 감독을 향한 두터운 신뢰와 즐거운 순간들이 빼곡했던 촬영 현장만으로도 ‘염력’은 심은경에게 두 번 다신 없을 작품이 틀림없었다.

 

언론시사회에서부터 누누이 말했듯, 심은경은 연상호 감독의 오랜 ‘덕후’다. ‘서울역’ ‘부산행’에 이어 ‘염력’까지, 연달아 세편 연속 연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 심은경에게 ‘성덕’(성공한 덕후)을 넘어 페르소나의 수식어까지 따라붙고 있다 말하자, “정유미 언니도 있는데요 뭘”이라며 부끄럽게 웃으면서도 뿌듯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유미 언니랑 농담처럼 그런 얘기 한 적 있어요. 우리는 끝까지 연 감독님만 쫓아다니자고(웃음).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감독님을 많이 따랐고 좋아했어요. ‘부산행’ 촬영 당시에 감독님께 다음 작품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께서 ‘대작’ 주연 자리가 있으니까 조만간 시나리오를 보내겠다 하시더라고요. 한 1년 정도 후에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조만간 보내주신다더니…(웃음). 아무튼 그렇게 받아본 시나리오는 매우 새로웠고, 연 감독님스러워서 좋았어요.”

촬영에 앞서 연 감독과 얘기를 많이 나누며,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줄기차게 의논을 나눴다.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 감독과의 대화가 큰 도움이 됐다면, 촬영 현장에서는 감독의 몹쓸(?) 연기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장례식장이랑 경찰서 장면에서 감독님의 몸을 사리지 않는 지도가 빛을 발했어요. 지도라기 보다는 연기라고 표현해야 맞을 거예요. 감독님께서 연기를 진짜 잘하세요! 김민재 선배님 역할을 비웃으면서 ‘이게 증거라고?’라며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어요. 감독님께서 보여주신 톤을 정말 따라하고 싶었는데 저는 그게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 전에는 연기를 할 때 내 스타일로 응용을 하는 것 정도로 그쳤다면, 연 감독님의 지도는 배우 입장에서 새롭게 다가왔어요. 연기를 좀 더 갖고 노는 듯 한 쾌감을 많이 느꼈죠.”

 

극중 아버지 석현 역의 류승룡과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합을 맞춰봤다. 공포영화 ‘불신지옥’에서 처음 만났으며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함께 했다. 직접적인 관계로서의 호흡은 ‘염력’이 처음이었다. 연기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울게 많은 선배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

“승룡 선배는 정말 상대 배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분이세요. 영향도 많이 받았고, 조언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어요. 촬영하는데 문득 저를 부르시고는 이런저런 본인의 경험담을 얘기해주시더니, ‘은경이가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염력’ 촬영이 끝나고부터는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 신중함을 갖게 됐죠. 선배님께는 너무 감사드려요. 인품, 연기를 대하는 자세, 연기를 즐기는 방식 모든 걸 보며 많이 배웠어요.”

심은경은 극중 초능력자 석현의 강한 생활력을 가진 딸 루미를 연기했다. 10년 전 어머니와 자신을 비정하게 떠난 아버지 석현에게 애증을 느끼는 인물이다. 감정의 골이 깊으면서도, 여러 위기를 앞에 두고도 포기하지 않는 당차고 희망찬 인물이다.

“루미가 처음부터 어두운 심성만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픈 과거를 갖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가게를 잘 일궈 살아가죠. 그러던 어느날 도시개발로 인한 피해를 입고 꿈과 미래가 처참히 무너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계속 대항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사람들을 이끌어요. 그렇게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점이 좋았어요. 10년 동안 부재한 아빠를 만나 심경이 복잡한 와중에도, 스스로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희망을 내포하는 것 같았어요. 연기를 하면서, 이런 주체성을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죠.”

 

스스로 주체적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그러려고 노력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진중한 의도를 갖고 자신의 연기관을 쏟아내는 배우의 대답엔, 성인 연기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겪은 깨달음과 성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를 잘 아는 사람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밖에 없으니까요. 나를 잘 알아야 다른 중요한 것들도 지킬 수 있고, 연기를 할 때에도 진심이 우러나올 수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엔 그런 주체성을 지키지 못한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좀 깨우치고 있어요. 나만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스타일을 고찰해보고, 남을 많이 의식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연기에 대한 고민은 늘 따라붙어요. 예전 같았으면 끙끙 앓았을 문제들도 지금은 한결 마음을 편하게 먹고 대하고요.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바람이 있다면 기발한 악역을 만나고 싶다. ‘염력’에서 정유미가 연기한 홍 상무는 워너비 악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나리오 봤을 때부터 이목이 확 집중되는 캐릭터였어요. 감독님께 농담 삼아 ‘나도 홍상무 하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했죠. 어떤 배우라도 욕심을 낼법한 캐릭터잖아요? 영화를 보고나서도 자극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평소에 악역, 악당, 안타고니스트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악역을 한 적은 없어요. 그러던 와중에 루미 언니가 새로운 악당의 모습을 제시해준 것 같아서 너무나 반가웠고,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에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자 한다는 결심처럼, 2018년의 목표도 별 거 없다. 그저 무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소망. 아무거나 해도 괜찮고, 무엇을 꼭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거다. 이 생각을 갖기까지 오랜 세월을 거쳤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솔직하고, 최선을 다 해서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그런 한 해. 간만이네요. 새해 초반에 관객 분들 찾아뵙는 건 ‘수상한 그녀’ 이후에 오랜만이에요. 지금은 그때 생각이 나서 감회도 새롭고, 새해 첫 포문을 ‘염력’으로 여는 것도 행복해요. 연달아 두 작품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쑥스러우면서도 긴장도 되고 설레요. 얼른 관객 분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사진제공=매니지먼트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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