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느박’ 박찬욱(53)이 10번째 장편영화 ‘아가씨’로 돌아왔다. 칸영화제에 단골손님처럼 드나드는 그의 영화에 걸린 팬들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이젠 그 기대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직접 마주한 표정에선 긴장이 역력했다. 영화 속 당당함과는 달리 “관객들의 평가가 궁금해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개봉 소감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개봉을 앞두고는 언제나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많은 분들이 좋아해줄까? 이 생각은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감독으로서 일단 투자자들의 손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이 있지요. 그래도 수출도 꽤 많이 되고, 예매율도 좋다고 해서 기분은 좋습니다. 이게 일단 감독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도의적 책임도 있고, 다음 영화 투자를 판가름하는 문제도 겹쳐있죠. 어쨌든 영화를 계속 찍고는 싶으니까요.(웃음)”

 

 

오랜만에 만난 한국 영화

한국에서 장편을 찍은 건 ‘박쥐’(2009) 이후 7년 만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이 ‘스토커’(2013)를 찍을 당시 미국의 제작 시스템과 유사해 어색하지는 않았다. 촬영 시간이 짧아져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청출어람’ ‘고진감래’ 등 단편은 꾸준히 찍었지만 장편은 오랜만이죠. 요즘 한국도 제작 시스템 측면에서 미국처럼 변해서 큰 차이는 없어요. 12시간 근무나, 촬영 횟수 제한, 표준 근로 계약이 생겼죠. 그래서 예전보다 더 빨리 찍어야 해요. 현장에서 다양하게 찍어보지 못했다는 게 좀 아쉽긴 하네요. 그래도 지금 ‘아가씨’에 충분히 만족합니다.”

 

 

완벽주의자? 철저한 준비!

촬영에 들어가기 전, 리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배우들로부터 ‘완벽주의자’란 말까지 들었다. 오랜 시간 영화를 찍어오면서 느낀 건 ‘준비’의 중요성이다. 아름다운 그림을 효율적으로 촬영하기 위해서 고민은 일찌감치 끝내 놓는다. 그럼에도 늘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촬영 중에 일일이 의논하면서 찍긴 어려우니까, 논쟁이나 상의는 미리 해놓는 게 현명한 거죠. 어차피 현장에서 노심초사하기보다 편안한 게 좋잖아요.(웃음) 이번 영화엔 또 일어가 많아서 조금 더 준비가 필요했죠. 게다가 조진웅, 하정우, 김민희, 김태리 모두 다 처음 만나는 배우들이니까 친해질 필요가 있었어요. 미리 알아가려고 유독 심하게 리딩한 감도 있어요.”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영화팬들은 박찬욱의 영화에서 유독 깊은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명감독이니까 특별한 게 담겨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들을 대신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확고한 철학과 예술관을 예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영화를 만들어 놓고 차츰 깨닫는 것 같아요. 다른 감독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찍어요. 다 만들고 나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알게 되더라고요. 지금 ‘아가씨’를 생각해보면...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네요.”

 

 

 

사진=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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