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요란했던 드라마가 또 있었을까. JTBC ‘설강화’ 얘기다. 

사진=JTBC
사진=JTBC

올 초 SBS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여 불명예 퇴장을 당한 여파가 가시지 않았건만.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니만큼 여론은 험악하기 이를 데 없다. 

시청자들은 간첩이 민주화 투쟁의 핵심이었던 대학생들의 보호를 받는다는 설정, 안기부로 등장하는 인물이 영장주의를 준수하는 등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었다는 점을 들어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영장주의를 준수하는 안기부 요원이라는 말도 참으로 당혹스럽다. 용이나 유니콘에 비견될 법한 표현이 아닐 수 없으니. 실제 역사 속 안기부가 기획했던 간첩 조작 사건들은 인민혁명당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서울대 의대 간첩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 등 셀 수 없을만큼이건만. 

이에 ‘설강화’ 폐지 청원은 이미 30만을 넘어섰다. 2화만에 폐지됐던 ‘조선구마사’의 청원을 훨씬 웃도는 속도다. 한 청년단체는 ‘설강화’ 시청 금지 가처분 소송을 예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진=티젠홈페이지 캡처
사진=티젠홈페이지 캡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설강화’ 광고·협찬사들은 줄줄이 손절에 나섰다. 티 브랜드 티젠은 ”직접적인 제작 협찬이 아닌 단순 광고 노출”이라면서도 ”광고를 중단하도록 조치했다. 제작과 일절 관계가 없음을 알린다”고 선을 그었다. 이 외에도 한스전자, 가니송, 싸리재마을 등은 ”협찬 당시 대본 등을 사전에 고지받은 적이 없다”며 ”역사 왜곡으로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 드린다”고 적었다.

정치권 또한 비판에 가세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며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해야 한다. 문제 의식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진=진중권SNS
사진=진중권SNS

반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대체 이게 뭐하는 짓들이냐”며 운을 뗐다. 그는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라”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다. 이념깡패들의 횡포를 혐오한다”고 꼬집었다. 

시청자들은 물론 정치권, 문화권까지 아우르며 진통을 겪고 있는 와중. JTBC는 ‘설강화’를 폐지할 의향이 없단다. 지난 21일 JTBC는 입장문을 통해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며 ”역사 왜곡,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대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렇듯 평지풍파를 일으켰지만 당장 백기를 들지 않는건 아무래도 지난 7월 모든 촬영을 마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미 비용은 모두 들였고 회수만 하면 되는데다 단독 방영하는 ‘디즈니플러스‘에서는 5개 국에서 TOP5 안에 진입하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더더욱. 

JTBC는 입장문 말미에 이 모든 우려가 전개 과정을 통해 일소될 것이라고 자신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글쎄. 드라마는 농 반 진 반으로 작가 놀음이라는 말이 있는만큼 영 못할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이 모든 이야기를 구현하는데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유현미 작가는 대체 어떤 마법을 준비했을까. 풍파에 가까운 세간의 우려와 분노를 종식시킬만한, 가히 만파식적에 비견할 서사여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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