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장 뜨거웠던 배우를 꼽자면 누가 있을까. 쟁쟁한 배우들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사극에서 두각을 드러낸 여배우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사진=프레인TPC, 싱글리스트DB
사진=프레인TPC, 싱글리스트DB

대답은 둘로 갈릴 것이다. ‘연모‘의 박은빈, 혹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이세영. 92년생 동갑내기인데다 아역으로 데뷔했다는 점은 물론 데뷔 연도까지 같은 두 사람은 2021년 후반 드라마계를 뜨겁게 달궜다. 정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구현해낸 두 사람의 활약은 괄목할 만했다.  

사극은 장르적 특성상 일상적이지 않은 대사 처리로 소위 ‘연기력 털리기 딱‘이라는 말을 듣기 일쑤. 어지간히 내공이 쌓인 배우가 아니라면 현대극에서 호연을 펼쳤다 하더라도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건만. 이세영과 박은빈은 10년은 웬말인가. 20년은 족히 될 구력으로 대사 처리는 물론 캐릭터의 복잡 미묘한 심리까지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표현해냈다. 

사진=KBS 2TV
사진=KBS 2TV

‘연모’는 박은빈의 독무대였다. KBS 2TV ‘명성황후’, ‘천추태후’, KBS 1TV ‘무인시대’, MBC ‘구암 허준’, SBS ‘비밀의 문’ 등 필모그래피가 사극으로 빼곡히 채워진만큼. 그간의 내공이 주역을 차지한 후 빛을 발한 케이스.

쌍둥이 오빠를 대신해 왕이 된 이휘를 맡은 그는 왕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카리스마를 뽐내고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 한편 상대 배역 로운과의 애틋한 로맨스까지. 말 그대로 그간 쌓아온 모든 경험치와 능력을 뽐내 극을 꽉 채웠다. 

물론 호평만 있는건 아니었다. 극 초반 상대 배우 로운이 첫 사극인 탓에 연기력 논란이 일었을 뿐 아니라 본인 또한 미스 캐스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으니. 장신인 로운에 비해 왜소해 ‘케미’가 살지 않기도 했고 어딜 보나 여성인 그가 남성인 양 목소리를 낮게 노호를 내지르는 모습은 어색하다는 평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우려와 논란들을 박은빈은 연기력으로 모조리 걷어냈다. 극이 전개되며 정적들과의 설전에서 뿜어낸 차분한 카리스마하며. 아버지와의 애증에 가까운 관계를 섬세한 표정 연기로 표현해내며 극을 지배했다.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연애물로서의 매력은 상대 배역을 노련하게 리드해 완성도 높은 애정 감정선을 자아내며 완성시켰다. 

사진=MBC
사진=MBC

2021년 후반 가장 화제였던 드라마는 단연 실존 인물인 의빈 성씨와 정조의 로맨스를 그린 ‘옷소매 붉은 끝동’이었다. 이세영은 훗날 의빈 성씨가 되는 성덕임 역을 맡아 열연했다.

‘후궁은 왕을 진정 사랑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만큼 극 중 이세영이 짊어진 짐은 컸다. 후궁이 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작업이 쉽지 많은 않았을 터. 일견 구현해내기 힘들만한 인물을 이세영은 지문 속 행간에 숨겨진 복잡 다단한 감정들을 손 끝의 떨림, 숨소리 등으로 섬세하게 그려내 설득력을 부여했다.

일국의 지존인 임금의 여자가 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하나 국가의 법도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 날개가 잘려 점차 색을 잃어가는 의빈 성씨의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눈물 짓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세영은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던 ‘카이로스’에 이어 최고 시청률 17.4%라는 기염을 토하며 종영한 ‘옷소매 붉은 끝동’까지 현대극과 사극을 아우르는 맹활약을 보여줬다.

사진=나무액터스, 프레인TPC
사진=나무액터스, 프레인TPC

보통 아역 출신들이 성인 배역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때 기존의 이미지의 연장선으로 이어가거나 강한 캐릭터나 작품을 택하는 무리수를 두는 데에 반해 또 다른 선택지를 들고 나온 바 있다.

나이에 맞는 배역을 맡으며 때를 기다리는게 그것. 다양한 작품,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아 ‘열일‘하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함께 나이를 먹는 것을 느끼되 연기력을 통해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도록 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두 배우는 발성은 물론 감정, 표정 연기까지 어지간한 중견 배우 이상의 관록을 갖췄으니. 박은빈과 이세영이 빛나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은 물론 이 모든 조건들을 만족했기에 가능한게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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