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예측가능한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특유의 톤이 없다.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사도’, ‘동주’. 이 모든 작품이 한 감독에게서 탄생했다. 장르에 귀속되지도 않고 주제에 있어서도 자유롭다. 그래서 매번 이준익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신작을 기대하게 된다.

‘동주’, ‘박열’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을 마무리 할 ‘변산’이 올 여름 관객들을 찾아온다. 무려 힙합 청년 학수(박정민 분)를 내세웠다. 힙합의 감성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말 그대로 스웨그 있는 행보다.
 

Q. 왜 랩을 선택했나.

어느 시대나 청춘들을 대변하는 문화가 있지 않나. 내 시대의 청춘은 록이었다. 우리 시대가 비틀즈를 좋아했다면, 지금은 에미넴을 좋아한다. 마치 우리 세대의 록처럼 랩이 청춘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랩을 통해서 청춘의 심리, 감정을 밀접하게 영화에 담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와이? 당연히 알고 있다. 산골에 사는 시골아재에 비유하면 섭섭하다(웃음).

 

Q. 학수와 어릴 적 친구들의 유치한 세계,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 중 하나다. 어렸을 때는 완력이 권력이 되는 시절이 있다. 어려서 먼저 큰 놈이 나중에 꼭 키가 작아지더라. 역전된 성장과정의 에피소드는 모든 남자가 가지고 있는 거 같다.

 

Q. 유쾌한 영화지만 학수와 아버지의 관계를 보면 눈물이 나더라.

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지만, 학수가 용서를 한 거처럼 나온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 용서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용서 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극중 학수 아버지는 용서받으려고 노력한다. 울면서 웃음이 나오는 감정은 복합적이고 아이러니한 것 같다. 보통 웃픈 상황이라고 하지 않나. 슬픔과 아픔 사이에 웃음이 계속 이어지는게 이 영화의 목표였다.
 

Q. 부자간에 몸으로 치고받는 장면은 ‘똥파리’ 이후 처음인 거 같다.

몸싸움 후 아버지가 ‘펀치는 그 정도면 됐다. 그 놈이랑 정리하고 나랑 정리 하자’고 말한다. 아버지가 바란 건 학수와 용대의 갯벌싸움이지 않을까. 서로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상처, 아픔, 비겁함, 그 불편함을 다 떨쳐버리려면 몸부림을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싸우고 탈진한 상태에서 허공을 보면서 나와서 ‘개완하다, 후련하다’고 외치는 게 해소인 거 같다.결국 용대한테 가서 면대면으로 붙을 용기를 준 건 아버지다.

 

Q. 학수는 왜 용대에게서 도망가지 않나.

전개의 개연성을 생각하면 도망가면 되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학수가 도망가야 할까. 선미가 ‘넌 정면을 보지 않아’, ‘넌 네 아버지랑 똑같은 새끼야’,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했는데 여기서 학수가 떠나면 결국 도망을 치는 게 된다.

 

Q. 힙합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변산’과 달리 염세주의적인데.

힙합은 미국문화지 않나. 미국 영화 흉내 내려고 영화에 힙합을 사용한 게 아니다. 외국에서 어떤 문화가 들어오면 그것이 우리 고유의 문화와 크로스오버 되며 정착한다. 이렇게 정착된 문화가 역으로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준다. 그게 문화의 교류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만 봐도, 우리가 서양것을 열심히 따라하면서 추종한 게 아니라 우리 것과 잘 믹스해서 그들이 우리것을 좋아하게 만든 거다. 랩을 쓴다고 흉내만 낸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나.

 

 

Q. 캐릭터들의 선과 악이 모호하다.

인간이 원래 그렇지 않나. 절대 선이 없다. 있으면 말이 안되는거지. 양면성, 다중성, 입체성이 인간을 이루는 본질이다. 절대성은 인간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악, 절대선은 헐리우드에서 만들어놓은 허상이다. 싸움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거라고 본다.

 

Q. 이준익 감독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서울토박이다. 고향이 물리적인 지역만 명명하지는 않는다. 물리적인 공간은 너무 많이 변화한다. 고향은 감정적인 곳이고, 감성적인 곳이다. 시간일 수도, 공간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옥토에 떨어지고 누군가는 자갈밭에 떨어진다. 그 자갈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서 열매를 맺는다. 고향은 자신의 정체성하고 맞닿아 있는 곳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려면 내가 어디서 왔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고향이다.

②에 이어집니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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