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개봉 7일차 관객 200만을 돌파했다. ‘외계+인’부터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을 거친 여름 ‘BIG 4’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당초에는 가장 약체로 평가받았지만 호평속에 반등하고 있는 모양새다. 개봉과 함께 중부권 집중호우를 맞아 시작이 주춤했지만 비가 기세를 줄인 주말을 시작으로 관객이 몰리며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헌트’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이정재의 첫 연출작인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기대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감독’ 이정재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제작 과정들을 들어보면 그가 영화를 위해 들인 수고와 연구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정재는 칸에서 들었던 ‘한국 현대사를 모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혹평을 수용해 영화 내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에서 ‘소재’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모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영화’에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된 것은 무게가 다르다.

또한 이와 동시에 80년대 배경의 영화가 짐짓 관객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이념적, 진영논리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점도 스마트하다.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라는 개인들의 얽히고 설키는 이상과 감정을 갈등 요소로 설정하며 여기에 첩보액션이라는 인기 장르가 더해져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동림’의 정체를 일찍 공개해 첩보물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개연성에 대한 실수를 최대화 한 채 두 사람의 선택에 집중한 것도 장점이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가장 중요시한다고 말한 ‘안기부 매직미러’ 장면이 이를 대표한다.

두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평호와 정도는 반대편이 비치지 않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상대방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대립하던 두 사람이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후 평호와 정도는 육탄전을 벌이며 함께 뒹굴고, 종국에는 재를 뒤집어쓰며 서로의 색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동진 평론가는 여기에 더해 “두 사람의 양복 색깔도 점점 같아진다”며 세심한 연출을 짚어 내기도 했다. 해당 연출은 다른 방식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했던 두 주인공의 동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첫 연출을 맡은 신인 감독이 보여준 것으로는 아주 훌륭했다.

여기에 평호와 정도가 준비하는 ‘테러’가 현대 대한민국에게 공공의 적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시하는 것도 영화의 이념을 떠나 관객의 심리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것에 한몫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같이 대체역사를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현재 극장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소문’이다. ‘외계+인’과 ‘비상선언’이 좋지 않은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실패한 것을 봤을 때 ‘헌트’에 대한 호평이 퍼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정우성은 “배우가 연출을 맡는 것에 대한 편견이 아직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정재가 이번 ‘헌트’를 성공시켜 이 시선을 바꿀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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