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팬들의 관심이 여느 때보다 뜨겁다. 국제 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결승이 2017년 이후 5년 만에 한국팀 내전으로 성사됐기 때문이다.

사진=라이엇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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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에서 진행되는 롤드컵 결승전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이하 ‘LCK’) 소속 팀인 T1과 DRX가 맞붙는다.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타이틀 답지 않게 최근 몇 년간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고전했다. 지난 2020년 담원 기아가 롤드컵 우승을 차지하긴 했으나 전후로 중국 LPL 소속 팀들이 강세였고, 전체적인 전력이 중국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는 한국에서 활동하던 유명 선수들이 고액 연봉을 앞세운 LPL로 많이 차출되며 벌어진 일이기는 하나 아무래도 국내 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내듯 올해 롤드컵은 ‘LCK 대잔치’였다. T1과 DRX에 젠지까지 총 세 팀이 준결승에 오르며 기대감을 높였고, 선수들은 결과로 증명했다.

사진=라이엇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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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은 세계 굴지의 강자의 모습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원로 선수급 슈퍼스타인 ‘페이커’ 이상혁을 앞세워 4강에서 LPL 소속 JDG를 압도했다. 데뷔 이후 줄곧 T1에서 기둥 역할을 맏은 이상혁은 이미 팀에 세 번의 롤드컵 우승컵을 안긴 바 있다.

그는 JDG와의 4강전에서도 여전히 명불허전인 컨트롤 실력에 다년간의 경험이 더해진 노련미로 JDG를 이리저리 흔들며 승리를 견인, 자신이 왜 ‘불사대마왕’인지 여실히 드러내며 6년만의 우승을 노린다.

직전 흔들리던 T1을 살려낸 신인 선수진인 ‘제우스’ 최우제와 ‘오너’ 문현준의 패기 있는 플레이에 현재 세계 정상급 바텀 듀오인 ‘구마유시’ 이민형과 ‘케리아’ 류민석의 폼도 매섭다. 이번 시즌 T1은 누구 하나가 ‘멱살 잡고 캐리’하는 구조가 아닌 완전체 팀의 면모를 보인다.

사진=라이엇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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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X는 ‘언더독의 반란’의 정석을 보여줬다. 이번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던 와중 속속 이변을 일으키며 최초로 대회 리그 4번 시드가 결승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8강에서 상대한 EDG가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4강에서 만난 젠지는 올해 LCK 우승팀이었기에 계속해서 DRX의 패배를 점치는 흐름이 이어졌던 상황에서 DRX는 이번 롤드컵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돌풍을 일으키며 결승까지 당도한 DRX는 김혁규가 그룹스테이지에서 패배 이후 “저희끼리만 안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한 말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기사화되며 프로게임계 역사에 남을 명언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경기 내용만 보자면 아직도 DRX는 T1에게는 밀리는 듯하다는 평가가 주다. ‘킹겐’ 황성훈과 ‘표식’ 홍창현이 기복이 있는 플레이를 펼쳐와 그들의 고점을 결승에서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 와중 돋보이는 것이 ‘제카’ 김건우와 ‘데프트’ 김혁규다. 김건우는 왜 이제야 조명을 받았는지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수준 높은 플레이로 DRX를 결승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으며, 김혁규는 T1 이상혁과 함께 얼마 안 남은 10년차 프로게이머로 죽지 않은 폼을 보여주며 ‘베릴’ 조건희와 함께 팀의 하반신을 든든히 지탱했다. 김혁규는 생일이었던 지난 10월 23일 EDG를 이기고 축하를 받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해 화제가 됐다.

사진=L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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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은 연결고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4일 열린 미디어데에서 이와 관련한 선수들의 언급이 팬들에게 재미와 기대감을 더했다.

각 팀의 기둥인 이상혁과 데프트는 함께 서울 마포고등학교 출신의 동갑내기다. 두 선수가 프로생활을 이어오는 10년간 꾸준히 언급이 됐고, 이번 롤드컵 결승전은 ‘마포고 더비’라는 별칭을 받기까지 했다.

이날 김혁규는 이상혁을 향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는데, 복수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승부욕을 불태웠고 이상혁은 “내가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가 되겠다”고 받아쳐 함께 환호를 받았다.

또한 류민석은 김혁규와 같은 팀에서 뛰던 당시 그에게 “롤드컵 우승 시켜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혁규는 상대로 자신을 상대로 만나 “꼭 이기겠다”는 류민석에게 이를 언급하며 “약속을 지킬 때가 된 것 같다”고 도발하기도 했다.

LOL 미드라이너에게 ‘페이커’라는 이름은 언제나 넘어야 할 산이다. 이상혁이 경력이 길어지며 컨트롤 실력은 정점에서 내려왔지만, 넓은 챔프폭과 운영능력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이를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교전 능력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DRX의 김건우가 어떻게 상대할 지도 관전 포인트다.

사진=라이엇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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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과 DRX 두 팀이 결승에 오르며 LCK 자체의 팬이라면 어떻게 해도 해피엔딩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LCK 각 팀의 팬덤이 얼마나 극성인지는 LOL 이스포츠를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국내 팀이 치르는 매 경기 온라인 중계 채팅창과 커뮤니티는 서로를 향한 비난과 조롱으로 가득 찬다. 5년만, 모처럼 LCK가 롤드컵 결승을 온전히 채웠다. 이번에는 집안 잔치처럼 그저 행복한 결승전을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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