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의 한국어 공연 '오페라의 유령'이 오는 11월까지 공연가 흥행 질주를 벌이는 중이다. 뮤지컬 배우 송원근이 19세기 파리 오페라극장 프리마돈나 크리스틴과 폭염과 같은 사랑을 나누는 반듯한 귀족 청년 라울 역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부산 공연 때였는데 처음으로 무대 도중 핑~ 돌았어요. 그러곤 '다 쏟았다'란 느낌이 밀려들었어요. 호텔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한 채 몇시간 동안 누워있었죠. 매번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말 진이 빠졌던 공연이었는데 이상하게 어느 때보다도 후련했어요."

로맨틱한 캐릭터를 많이 소화해왔기에 라울은 어찌보면 적역이다. 하지만 유령과 추격전을 벌이는 등 이러저리 움직임이 많은 캐릭터라 체력적, 감정적 소모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성악적 기량이 요구되는 캐릭터 및 넘버들이 많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란 물음표가 쉽사리 가시질 않았던 터다.

"성악이란 장르를 배워야 하나,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지금까지 해오던 발성이 있는데 새로운 걸 시도했을 때 잘 해낼 수 있을까...고민이 꼬리를 물었어요. 결론은 내가 가진 걸 바탕으로 그 안에서 잘 만들어가보자였죠."

처음부터 배우로 시작하지 않은 '외인구단' 송원근은 공연계에서도 선구안이 좋은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대부분 호평을 받았고, '망작' 오명을 쓴 적도 별반 없다.

"작품 고를 때 기준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냐 아니냐에요. 그러면 제가 더 감성적으로 임하게 되더라고요. 굉장히 심한 레플리카(원작을 비슷하게 모방한 작품)여도 여운이 강한 공연도 있거든요. '오페라의 유령'은 체계적으로 약속이 돼있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죠. 그런데도 감동이 진해요. 첫 런스루 후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모두 울었어요. 유령의 그 회한이 울컥하게 만들더라고요."

패션잡지 유행통신의 전속모델 1기로 활동하다 2000년 보이그룹 OPPA의 2기 멤버 한글로 가수 데뷔를 했다. 이후 2008년 첫 개인 앨범을 내고 이불(E-BUL)이라는 예명으로 솔로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다음해 예명을 런(RUN)으로 바꿔 EP 'Face-Off'를 발표했다. 창작뮤지컬 '궁' 오디션에 지원해 2010년 주인공 이신 역으로 뮤지컬 데뷔했다. 

"수술을 3차례나 할 정도로 다리 부상이 심해 가수활동을 접으려 했어요. 활동 내내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연예계를 떠나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건축설계 쪽을 준비하다 소속사의 강권으로 '궁' 오디션을 치렀죠. 뮤지컬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서 오히려 편하게 했어요. 캐릭터랑 잘 맞아서 합격했단 말을 들었고요. 첫공을 마쳤는데 가수 때보다 더 따뜻한 박수가 터지더라고요. 2~3분 노래하는 것과 달리 2시간30분 동안 상대와 호흡을 맞춰가는 것도 매력이었고요. 이렇게 길게 할지는 저도 몰랐어요. 어찌어찌 하다보니 '오페라의 유령'까지 왔어요.

송원근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강렬히 각인시킨 작품은 2013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오로라 공주'였다. 독특한 게이청년 나타샤를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게 연기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정말 감사한 작품이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아 부담스럽기도 해요. 오디션 때는 터프한 카사노바 캐릭터였다가 나중에 급 바뀌었죠. 이상하고 불안한 마음에 대본을 받은 뒤 거절했는데 작가님이 맞물린 뮤지컬 2편('쓰릴미'와 '아가씨와 건달들') 스케줄을 조정해 줄테니 출연하라고 권유를 하셔서 결국 하게 된 거예요. 원래 20회만 출연하기로 했는데 100회 넘게 등장하게 됐죠. 기독교 신자인데 극중 절에서 백팔배까지 하고..."

그의 13년 무대 커리어에서 모먼텀을 만들어준 작품은 '쓰릴미'다. 공교롭게 유괴와 살인 등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게이청년 2명이 극을 이끌어가는 2인극이다.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엄청 두려웠어요. 내용도 난해하고 2시간을 단 두 명이 끌어가야 했어서. 하지만 10주년 공연까지 무려 3번이나 참여했어요.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를 제대로 느꼈죠. 그간 애정하는 필모그래피가 많은데 2인극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던 듯해요. 내가 이끌어가는 신이 아니어도 늘 상대배우와 같이 있어야 하니까. 처음엔 압박이었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무대가 많이 편해졌어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이란 생각도 들고."

사진= 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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