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런 보컬이 있다고? 해외 팝 듣는 것 같은데?', 빅나티 'Hachiko'와 비오 'Brunch' 피처링을 통해 가수 시온(Sion)을 처음 접하고 든 생각이다.

시온은 2003년생 아직 만 20세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보이스와 색깔로 음악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박재범, 악뮤 등의 샤라웃을 받으며 방송에도 출연하고,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뉴진스, 르세라핌, 아이브 등과 함께 올해의 신인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사진=뷰티플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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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천재 아티스트' 시온은 성악가 부모님 아래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어릴 적 클래식 악기로 음악을 시작해 랩, 그리고 노래까지 하게 됐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뷰티플노이즈 사옥에서 싱글리스트와 만난 시온은 "독일에서 5세 때 피아노랑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다. 성악가 부모님들이 다 그렇듯 음악을 직업적으로 하는 걸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셨지만 하다 보니 너무 푹 빠져 이게 제 꿈이 돼 갔다. 그런데 점점 가면 갈수록 클래식 세계가 각박하다고 느꼈다. 15세쯤에 부모님한테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고 통보했다. 바이올린도 거의 동 시기에 그만뒀다. 그렇게 공부만 계속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쯤 됐을 때 다시 음악을 하고 싶더라. 근데 클래식 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었고, 그때쯤 처음 제대로 팝, 락 등의 음악을 들어본 것 같다. 그리고 랩으로 팝 음악을 시작했다. 릴 웨인 'Shooter'라는 곡을 친구가 들려줬는데 너무 감명을 받았고, '너 음악 잘하잖아. 랩 해봐' 친구들에 등 떠밀려 얼떨결에 랩을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시온은 "그렇게 랩을 하기로 결심하고 몇 개월 안 됐을 때 부모님이 '너 대중음악 할 거면 오디션 같은 것도 나가 봐야 하지 않겠냐'라며 저를 대신해 'The Voice of Germany'(더 보이스 오브 저머니)에 지원해주셨다. 그 오디션에서 방송에 나오는 예선 전에도 다른 예선이 많이 있다. 그 예선에서 랩도 준비하고 노래도 준비했다. 저는 랩에 뜻이 오히려 좀 더 있었는데 방송에서는 '노래가 너무 좋은데?'라며 노래를 시키는 거다. 그래서 노래로 첫 방송에 나가고 극적으로 세미 파이널까지 갔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힙합에 대한 애정도가 좀 떨어졌다. '노래도 재밌는데? 차라리 노래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전부터 노래하는 건 좋아했다. 방에서 노래 따라 부르고 하면 부모님이 성악가이시니까 아버지가 바로 들어오셔서 '발성, 호흡 잡고 노래해라'라며 발성법과 호흡법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다. 그렇게 노래를 제대로 하기로 결심해서 친한 오스트리아 형들이랑 셋이서 제 첫 싱글 'Molting'을 만들게 됐다"라고 얘기했다.

사진=뷰티플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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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온의 야심 찬 데뷔작 'Molting'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자 시온은 음악을 접을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를 다시 음악의 길로 인도한 건 다름 아닌 현 소속사 뷰티플노이즈 대표 마미손이었다. 원슈타인, 지올팍 등을 발굴한 마미손의 뛰어난 안목이 또 한 번 빛을 발한 것이다. "싱글을 냈는데 아무도 모르고 안 들어주고 그러니까 어린 마음에 좀 불이 식더라고요. 제가 다행히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교(쾰른대학교 영어영문·독어독문 복수전공) 합격을 해놓은 상태여서 '음악 접고 공부나 해야겠다' 하고 대학을 들어갔는데 마미손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 'The Voice of Germany' 영상 어떻게 보시고 '너무 좋은데 같이 작업해 볼 생각 없냐' 그래서 '마지막으로 도전해 볼까?' 해서 사장님한테 '너무 좋습니다' 했죠. 그리고 사장님이 '데모 같은 거 있으시면 보내주시겠어요?' 했는데 제가 그때 당시 만들어놓은 데모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있다고 하고 급하게 3일 동안 밤을 새우고 데모 테이프를 12곡 만들어서 사장님한테 보냈는데 반응이 너무 좋으셨어요. 사장님이 바로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전화해 회사에 들어올 의향 없느냐고 여쭤보셨는데 저는 그때 거절까진 아니고 잘 모르겠다고 얘기했어요. 이미 대학교도 합격해 놨고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컸죠. 근데 독일은 수능을 한번 보면 다시 볼 필요 없이 평생 아무 대학이나 지원할 수 있어 부모님이 '대학교는 언제든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한번 해보는 거 어때?' 그래서 한국을 왔어요. 계약을 하고 온 건 아니고 사장님이 '모르겠으면 와서 여기 지올팍이라는 아티스트랑 얘기도 해보고 친해져도 봐라' 그래서 얘기도 해보고 음악도 만들어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테스트 기간 3개월 동안 만든 곡들이 대부분 제 첫 EP 'love'에 들어간 곡들이에요. 그런데 테스트 시간을 가지고 계약을 한 후 마미손 형한테 그래도 대학 생활 해보고 싶다 해서 그냥 독일로 돌아가 버렸어요. 마미손 형이 그땐 얘기를 안 해주셨는데 지금 얘기하시기를 대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찾아가서 저를 설득할 예정이셨다더라고요. 근데 그때 코로나 시기여서 대학교 다닐 때도 동아리, MT 이런 거 아예 없고 그냥 학교 갔다 수업 듣고 다 마스크 쓰고, 또 어떤 수업은 아예 줌으로 듣고 그래가지고 재미가 없었죠. 대학교 6개월 정도 다니다 음악이 너무 하고 싶어져 가지고 자퇴를 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마미손의 안목은 시온의 대표 히트곡 'Braindead' 탄생에도 큰 역할을 했다. 우선 'Braindead'는 시온이 'dingo freestyle'(딩고 프리스타일)의 'RISING VERSE'(라이징 벌스)에 출연해 불렀는데 그것이 일명 '급발진 창법'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되면서 음원으로까지 내게 된 곡이다. "우리 회사에 gyun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원래 싱글이 있었어요. 그 싱글을 제가 프로듀싱을 해주고 피처링을 해주기로 했는데 그 비트랑 벌스가 'Braindead'예요. 애초에 제가 부르고 싶었던 벌스가 아니었는데 마미손 사장님이 이 벌스 알고 계시니까 '이 벌스 너무 좋은데 라이징 벌스 가서 불러라' 해서 '어 그럴까요?' 저도 별생각 없이 가서 불렀는데 이게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죠."

"사장님 안목 하나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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