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궁금합니다. 열 개의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싱글이라면 누구나 무엇이든 픽업할 수 있는 Single’s 10 Pick.

 

익명(32, 게임 디자이너)

 

 

1. 호밀밭의 파수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 즉물적 가치로 작동되는 세계 안에서 어떻게 자기 삶을 관철할 수 있는가 하는 테마는 J.D 샐린저의 작품들을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는 문제의식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이 대립은 '어른의 세계'와 '순수한 아이'로 형상화된다. 등장인물인 홀든 콜필드는 10대의 청소년으로 설정되어있고, 아이를 벗어나 어른의 세계에 편입되어야 하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 소설이 내 마음을 끄는 이유는 홀든 콜필드가 대립되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교란되면서도 어떻게든 '아이'로 대변되는 자신의 내면성을 놓치지 않고 버티려 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있고, 그 모습의 나의 유약함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목은 파멸이나 타락, 어느 한 결론으로 끌고 가지 않고 모호하게 희망적인 단서를 남기는 식으로 처리되어있다. 그것이 샐린저가 바라본 일종의 진실일 것이다. 

 

2. 스토리 경험을 주는 게임들

내 게임 취향은 <원숭이 섬의 비밀>같은 전통적인 어드벤처 스타일의 게임이나 <폴아웃>과 같은 RPG 게임들이다. 예전에는 스토리가 게임에 불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게임의 스토리가 플레이가 아닌 텍스트나 동영상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컷씬'의 형식을 통해 표현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의 스토리와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꾸준한 시도가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상당히 완성도 있는 게임들이 등장했다. <레인스>, <디스 워 오브 마인>, <오버워치>등의 게임은 각각 다른 형식이지만 훌륭하게 내러티브를 전달해주고 있다. 내 작업에 보다 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콘텐츠들이다. 

 

 
3. 영어 공부

지하철로 장시간 이동할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핸드폰을 이용해서 받아쓰기를 한다. 받아쓰기를 하면 소리에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들은 이야기를 다시 받아 적는 과정에서 내가 뭘 못 알아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스크립트를 본 다음 다시 들으면 안 들렸던 부분이 들린다. 그런 식으로 매일 경험을 쌓아가면서 점차 언어 사용에 익숙해지고 있다. 받아쓰기를 할 재료들은 굳이 돈 들이지 않아도 무궁무진하게 많다. 다행이지 않은가. 

 

4. 에버노트

아무 데서나 접속해서 편집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노트 프로그램이다. 자주 쓴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쓰기에도 좋고, 작업용으로 쓰기도 좋고, To-do 관리하기도 좋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나 기억해두고 싶은 페이지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저장해도 된다. 동기화 문제 때문에 충돌이 나는 경우가 가끔 있고, 노트가 길어지면 느려지는 문제도 있긴 하지만 일단 나는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5. 케이블 드라마 

고등학교 때 <CSI>가 히트를 하면서 국내에서도 미드식 플롯을 가진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드를 보는 친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공중파에서 그런 시도들을 하다가 비교적 검열 수준이 높지 않은 케이블 채널 드라마들이 등장하면서 드라마가 많이 재밌어진 것 같다. <비밀의 숲>은 최근에 가장 재미나게 봤던 드라마다. 

 

6. 독서

인문학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삶은 온갖 문제들로 나에게 시비를 건다. 개중에는 많은 생각이 필요한 일들도 있고, 어떤 것은 전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생겨나는 마음속의 물음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질문은 대답을 찾게 한다. 그 에너지가 책을 읽게 만들고, 사유를 운동하게 하며, 사람을 관찰하게 한다. 그러면 회의나 관찰 끝에 어떤 신념을 얻어내거나 태도를 결정할 수 있게 되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 나의 독자적인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다. 

 

 

7. 기타

휴대하기도 좋고, 배우기도 쉽고, (욕심만 버린다면) 가격도 비싸지 않다. 음악은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취미다. 훌륭한 연주는 하지 못하지만, 자기만족할 정도로는 연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8. 유튜브

나는 거의 매일 유튜브에 접속한다. 보는 영상은 기분이나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좌우간 동영상을 시청한다는 것 자체가 재밌는 경험이다. 나는 라이브 방송은 별로 보지 않는 편인데, 친구가 말해주길 TV에 나온 꼬마 아이가 BJ 이름은 알고 유재석은 모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유튜브 스트리머들이 연예인의 자리를 어느 정도 대체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영상을 휴대용 기기로 본다는 것 자체가 세대를 나누는 기점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디바이스가 정착을 하니 콘텐츠의 지형 변화로 세대가 나눠진다. 이런 데서 30대가 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9. 운동 

스트렝스 위주로 운동을 하다가 최근에 유산소의 비중을 높였다. 몸을 예쁘게 만들거나 근력을 확보하는 것보다 '생활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 그렇다. 공으로 하는 운동이나 순발력이 필요한 운동을 잘 못해서 아쉽다. 바쁜 게 지나가면 클라이밍에 취미를 가져볼까 생각 중이다. 

 

10. 연인 

'연애'라고 썼다가 '연인'이라고 고쳐 썼다. 연애라는 단어는 '나'의 행위를 개념화시킨 말이라 그 안에 연인이 피상적인 대상으로만 포함되는 것 같아서. 나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스스로 반성하게 만들기도 하는 좋은 사람을 연인으로 만났다. 행운이다. 마음으로는 정말 아끼고 있는데, 바쁜 일상에 치인다는 핑계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게 늘 아쉽다. 그럼에도 다그치거나 채근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태도, 그리고 선한 품성에서 많이 배운다. 오래도록 만날 수 있기를. 

사진=교보문고, CJ E&M,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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