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문화계에서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 중 다수가 '여성서사'란 이름으로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다만 늘 영화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렸다. 의미는 있으나 장르적 재미가 부족하다는게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올해 영화, 공연계에서는 이같은 편견을 깨부수는 작품들이 대거 선보여졌다. 

# '타여초'→'삼토반' '콜'...가지각색 女캐 돌풍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올해 초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퀴어를 소재로한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는 만큼 관객수는 14만명으로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올해의 영화' '인생영화'로 꼽으며 N차관람 열풍이 이어졌다.

'타여초'가 두 여인의 사랑이야기로 마니아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동안에도 마니아 위주로 지지받은 작품들은 꽤나 많았다. 반면 장르영화로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작품들도 있었다.

그동안 영화계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장르영화를 망설인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여성 인물이 장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제약이 있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흔히 액션이나 스릴러를 이끌어가기엔 힘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콜'은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변신한 배우 전종서와 이에 맞서는 박신혜의 열연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두 인물의 대립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신예 이충현 감독의 능력도 한 몫 담당했다. 무엇보다 '여성이라서'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이야기, 역할에 대한 고정적 젠더구분을 없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마찬가지다. 고아성과 이솜, 박혜수 세 명의 여배우가 뭉쳐 유쾌한 코믹드라마를 완성했다. 90년대를 배경으로하는 만큼 여성 사원들의 고충이 담겨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고발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와 무관하게 영화적 재미에 충실했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157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VOD 수익 등을 포함해 손익분기점도 돌파하며 상업 영화로의 목적도 달성했다.

# '마리퀴리' '리지', 공연계도 여풍(女風) 가속화

지난 4월 아시아 초연된 뮤지컬 '리지'는 4개의 역할, 8명의 배우만이 참여한 작은 규모지만 강렬한 록 사운드와 스토리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그동안 무대 위에 여배우들만으로 이뤄진 작품이 많지 않았던 바, '리지'가 깨부순 불문율이 반가웠다.

뮤지컬 '마리 퀴리' 역시 주목받았다. 지난 2월 초연한 뒤 반년도 지나지 않아 삼연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대형 무대 위주로 서던 옥주현이 합류한 것도 관객몰이에 한 몫을 담당했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여성이 겪는 차별을 다루지만, '여성이라서'를 넘어서 한 인간에 주목했다. 팬들로부터 호응을 얻었고 네이버TV 공연 실황 중계 58만뷰라는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기에 연극 '아마데우스' '언체인' 등에서는 배역에 대한 성별을 구분짓지 않는 젠더프리 형식으로 진행되며 유리천장 돌파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이들 모두 중소극장에서 진행된 만큼 아쉬움은 남는다. 영화에 비해 1년에 나오는 작품수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남녀를 구분하지 않게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보인다. 

사진=(왼쪽 위 시계방향) 홍의정, 신수원, 조슬예, 박지완, 최하나 감독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올댓시네마,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리틀빅픽처스

# 신인 女감독 대거등장...이젠 '여성' 꼬리표 제거할 때

영화계 국내 여성 감독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특히 신예 감독들의 대거 등장이 다양성 확장에 기여했다. 

'디바' 조슬예 감독과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스릴러 작품을 탄생시켰다. 박지완 감독의 '내가 죽던 날', 최하나 감독의 '애비규환', 임선애 감독 '69세' 등도 여성서사로만 홍보되는 뻔한 서사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선보였다. 성별에 따른 편견없이 바라보더라도 이들 작품의 완성도가 전반적으로 높았다.

오히려 아쉬운 건 이들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에서다. 주로 '여성 감독' '여성 서사'를 내세우는 식으로 홍보됐다. 남녀차별적 시선을 깨부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나 '여성' 꼬리표를 부착한다는 것 자체가 편견을 굳혀가는 느낌이 분명 있다.

앞선 작품들에서 충분히 남녀 구분없이 흥행 가능성을 입증한 바, 2021년에는 더이상 '여성' 꼬리표 없이 한 사람의 감독, 배우, 작품 자체로 선보여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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