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혜선(32)이 가공할 연기력으로 연말연시 안방극장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CJ ENM이 발표한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12월 21~27일)에서 ‘철인왕후’는 3계단 상승해 3위에 올랐다. 방영 직후 불거진 역사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혜선의 하드캐리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

불의의 사고로 허세남 셰프(최진혁)의 영혼이 깃들어 '저세상 텐션'을 갖게 된 조선시대 중전 김소용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김정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에서 김소용 역을 맡았다.

일찌감치 젊은 연기파 배우로 ‘낙인찍혀’ 왔음에도 그의 연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부분의 영앤리치 여배우들이 염두조차 못내거나 시도하기 꺼려하는 영역에서 빛나는 성취를 일궈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의 남성적인 캐릭터 연기, 보이시한 이미지는 새로울 것 없다. 하지만 타임슬립과 역할 체인지가 서사의 양 축을 이루는 ‘철인왕후’에서 김소용은 몸 안에 허세작렬이고 천하의 바람둥이인 남자가 깃든 인물이다.

‘남성적’이 아닌 ‘남성 그 자체’의 연기를 해야하는 캐릭터인데 내레이션을 맡은 최진혁과 실제 행동하고 말하는 신혜선의 싱크로율이 ‘착붙’이다. 건들거리거나 ‘욱’ 하는 표정부터 욕설과 비속어를 뒤섞은 대사, 손짓과 행동이 리얼하다. 특히 철종의 연인인 빈 조화진(설인아)에게 집적대는 대목에선 절로 웃음을 유발한다.

할리우드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웽크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런이 남성적 외피를 둘러쓴 채 이런 류의 연기를 탁월하게 소화했다면 신혜선은 우아한 궁전의 모습으로 남성성을 소화해 더욱 두드러진다. 남편인 철종을 향해 복합적인 눈빛으로 “노타치”를 연발하고, 남몰래 변장한 채 저잣거리의 기방에서 기생들과 어우러져 흥겨워하는 모습은 훌쩍 (여배우의) ‘선’을 넘은 느낌이다.

코미디 연기 역시 빼어나다. 젊은 여주의 경우 대부분 인기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에서 웃음을 책임지진 않는다. 가볍게 웃기거나 상큼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이미지 관리와 더불어 코믹연기를 잘 하는 다른 주조연 배우들이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베테랑에 코믹 감각을 보유한 전지현·김혜수 정도가 능숙하게 구사한다. 코미디부터 슬랩스틱까지 종횡무진 누비는 신혜선은 전작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보여준 푸른 떡잎이 더욱 무르익었음을 입증한다.

반면 플래시백에 등장하는 정숙한 김소용 장면에선 깊은 멜로의 감정을 우려낸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소용은 다방면의 서적을 섭렵, 학식에도 조예가 깊다. 누구보다 주체적이었던 그가 왕비 책봉 이후 권력 암투와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궁궐에서, 더욱이 자신에게 싸늘한 철종으로 인해 절망한 뒤 눈물짓는 대목에선 ‘황금빛 내인생’ ‘사의 찬미’ ‘단 하나의 사랑’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감성연기를 일순 폭발시킨다. ‘칸의 여왕’ 전도연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한다.

온몸으로 서사를 이끄는데 탁월할 뿐만 아니라 기존 질서를 교란시키는데 능숙한 이 9년차 배우의 ‘철인 행보’에 기대와 궁금증이 교차한다.

사진=tvN '철인왕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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