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영화 ‘미나리’의 후폭풍을 제대로 맞는 걸까. 78년 역사가 한순간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AP=연합뉴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미국 양대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할리우드 영화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정부패, 인종차별, 성차별 의혹이 담겨있다.

올해 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영화 ‘미나리’가 미국 제작 영화지만 한국어 대사가 절반이 넘는다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했다. 규정상 대사 절반 이상이 외국어인 영화는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없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전세계 영화인, 영화 팬들이 이 규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87명 회원으로만 구성된 HFPA는 그동안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재정 관리를 불투명하게 운영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월 제78회 시상식을 앞두고 LA타임스의 보도로 부패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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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FPA가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급해 윤리 규정 위반 논란이 불거졌고 2019년부터 2년간 지급액만 200만달러(22억2000만원)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2019년에는 30여명의 회원이 파라마운트 협찬을 받아 파리로 호화 외유를 떠났다는 내용도 드러났다.

또한 HFPA 회원 중 흑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고 ‘미나리’ 논란과 함께 스칼렛 요한슨이 성명을 통해 과거 HFPA 회원들로부터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았고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모든 화살이 HFPA를 겨냥하고 있었고 HFPA는 결국 ‘개혁안’이라는 걸 내놓았다. 1년 이내에 회원을 20명 추가하고 향후 2년 이내에 회원 수를 50% 더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개혁안을 좋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쏟아지는 비판을 막기 위한 해결책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보이콧 운동이 터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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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매년 방송해온 미국 NBC 방송은 10일(현지시각) 내년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기로 했다. NBC 방송은 골든 글로브를 주관하는 HFPA가 최근 발표한 개혁안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HFPA가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톰 크루즈는 ‘제리 맥과이어’ ‘7월 4일생’ ‘매그놀리아’로 받은 2개의 남우주연상, 1개의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반납했다. ‘어벤져스’ 시리즈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도 “HFPA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을 보게 돼 실망이다”고 비판했다. 그 누구 하나 HFPA를 보호해주는 이는 없었다. 이 모든 일은 HFPA가 자초한 일이다.

HFPA에게 필요한 건 완전한 ‘개혁’이다. 몇 년 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들의 잔치라는 ‘#OscarsSoWhite’ 비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한 해 만에 개혁을 선언하며 다양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기생충’의 비영어권 최초 오스카 작품상 수상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오스카 개혁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HFPA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보수적인 틀에 사로잡혔고 발전없이 할리우드 대표 시상식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살아남았다. 이번 보이콧 운동은 HFPA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78년 골든 글로브 역사가 사라지느냐, 다시 부활하느냐는 온전히 HFPA의 손에 달렸다. 그들이 할리우드 영화계의 목소리를 들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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