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시향과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무대를 성료한 김한(25)이 오는 7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더 엔드 오브 타임’에서 20세기 현대곡들로 청중과 만난다.

사진=크레디아

금호아트센터 상주음악가인 그는 1부에서 윤이상의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피리’와 슈토크하우젠의 ‘클라리넷을 위한 작은 어릿광대’를 들려준다. 2부에선 메시앙의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선보인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피아니스트 박종해, 금호라이징스타 출신 첼리스트 브래넌 조가 함께한다.

“상주음악가 프로그램을 잘 때부터 가장 공을 들였던 무대가 이 공연이에요. 금호와 제가 항상 올리고 싶었던 게 무반주 클라리넷 무대였죠. 악기 하나만 가지고 어떤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관심이 컸거든요. 1부에선 클라리넷 하나로 민낯을 보여줄 예정이에요.”

윤이상 곡은 오보에를 위해 작곡된 곡인데 오보에와 클라리넷으로 연주를 많이 하곤 한다. 한국적 정서가 배어 있어 선택했다. 독일 현대음악 작곡가 슈토크하우젠의 ‘어릿광대’는 듣는 재미도 있지만 놀라운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사진=크레디아

"악보에 연주자의 움직이는 제스처를 직접 지시해 놨어요. 종합예술처럼. 클라리넷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죠. 그동안 클라리넷 곡을 연주하면서 연주자의 틀 안에 갇혀있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어요.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이 곡이 새로운 시도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공연이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클라리네티스트로서 자신의 철학을 투영시키는 프로그램으로 무대를 채울 기회가 별반 없었는데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가 되면서 재단의 전폭적 지원 아래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마음껏 짤 수 있는 기회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그땐 음악 자체에 흥미를 못 느꼈다. 현악기와 건반악기에서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김한은 초등학교 2학년 음악시간에서 리코더를 배우게 됐다. 동요를 연주할 때도 구슬프게 잘 소화해 주목을 받았다.

사진=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듬해 학교에서 악기를 하나씩 골라서 취미로 배우게 됐는데 리코더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고르다 보니 클라리넷을 선택하게 됐어요. 큰아버지(국악 작곡가인 김승근 서울대 교수)께서 클라리넷을 권유하시기도 했고요. 갖고 다니기 편한 데다 색소폰과 메카니즘 비슷하니 배워보라고 추천하셨죠. 악기 가격이 저렴한 것도 매력이었어요.”

불다 보니 소리가 너무 예뻤다. 음악을 하면서 재밌게 했던 게 처음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 실력이 빠르게 성장했다. 교내 콩쿠르에서 덜컥 1등을 차지한 뒤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어나갔다. 4학년 때 이용근 선생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전공을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예원학교 2학년을 마치고 싱가포르 국립예술학교에서 6개월간 수학한 뒤 영국 이튼 칼리지(중·고 5년제 학교)에 스카우트돼 옮겼다.

“인문계 고교 과정을 배우느라 음악에 몰두할 수 없어서 당시엔 힘들었는데 되돌아보니 그때 쌓은 지식과 경험이 지금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그때 클라리넷에만 몰두했으면 지금쯤 번아웃돼 있겠죠. 전문 연주자로서 큰 고비 없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듯해요.”

사진=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지난해와 올해 팬데믹으로 인해 무관중으로 연주를 많이 했던 그는 지난달 초 벅찬 경험을 했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에서 시즌을 시작하면서 유관중으로 연주를 하게 됐어요. 확실히 무관중으로 연주할 때보다 에너지가 솟구치고. 생기가 돌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단원들 모두 혼을 담아서 연주하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었어요. 심지어 흐느끼는 단원도 있었고요. 코로나로 인해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순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됐죠.”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종신 부악장으로 3년째 활동 중인 그는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실내악 활동(금호솔로이스츠·바이츠퀸텟)을 병행할 수 있어 행복하다.

“관객들에게 최상의 연주를 전달하는 게 연주자로서 당면 목표예요. 신규 플랫폼에서의 활동이라든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프로젝트는 내가 정말 최상의 연주를 보여준다는 확신이 들 때 시도하고 싶어요. 요즘 음악 트렌드는 짧게는 몇십 초, 길게는 3분 내외인데 긴 호흡을 요구하는 클래식 음악으로 어떻게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지 항상 고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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