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는 명실상부 2000년대 초반 이후 최고의 IP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신비로운 설정과 알기 쉬우면서도 극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화와 소설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동심을 사로잡으며 수많은 ‘덕후’들을 양산해냈다. 테마파크에 전용 구역이 생기고, 전 세계 팬들이 모이는 공식 사이트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명성과는 달리, ‘위저딩 월드’를 선언하며 미디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려는 시도 이후에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 새로이 내놓은 프리퀄 영화 시리즈 ‘신비한 동물사전’과 연극으로 제작된 8편 ‘저주받은 아이’ 등을 비롯한 후속 작품들이 다소 애매한 평가를 받았고, 원작자 조앤 롤링이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번에 모처럼 작품성과 팬들의 만족도를 모두 챙기며 IP에 다시 불을 지피는 콘텐츠가 등장했다. 바로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다.

‘호그와트 레거시’는 아발란체 소프트웨어에서 제작한 3인칭 오픈 월드 액션 RPG로,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100년 전 시대의 마법학교 호그와트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배트맨’ 등 게임 분야에서도 성공한 다른 IP들과 달리, ‘해리 포터’ 시리즈는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던 시점에도 게임으로는 높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영화 본편이 개봉할 때에 맞춰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매번 발매됐으나 2000년대 중심이었기 때문에 퀄리티적 한계가 많았고, ‘아즈카반의 죄수’를 제외하고는 코어 팬들에게도 다소 평가가 엇갈렸다.

비교적 최근 발매된 ‘호그와트 미스터리’(2018)는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게임성과 서비스 면에서 많이 뒤떨어졌고, ‘포켓몬 고’와 같이 증강현실(AR)로 발매된 ‘마법사 연합’은 처참한 평가 속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호그와트 레거시’는 언리얼 엔진을 바탕으로 한 수려한 그래픽으로 다양한 마법 생물과 주문을 이용한 전투, 퍼즐 등을 높은 퀄리티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정식 발매가 10일부터 이뤄지는 가운데 디지털 디럭스 에디션 구매자는 지난 7일부터 플레이를 할 수 있었고, 공개 직후 ‘드디어 해리 포터 감성이 제대로 담긴 게임이 나왔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호그와트 학생으로서 기숙사를 배정받고, 수업을 듣고, 스토리를 따라 전투를 치르며, 마법과 관련된 각종 수집품을 모을 수 있다. RPG 답게 직접 마법약을 만들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치밀한 설정에 집착하던 ‘설정 덕후’ 조앤 롤링이 짜 놓은 바탕을 게임 속에 제대로 구현해냈다.

특히 ‘해리 포터’ 시리즈는 깊은 설정과 묘사를 보여주던 소설과 이를 다소 희생한 대신 엄청난 비주얼로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의 팬들이 갈리는 상황이었지만, 이번 ‘호그와트 레거시’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또한 영화의 BGM을 어레인지 해 들려주고, ‘위즐리’와 같은 친숙한 이름들을 가진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 등 코어 팬층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다만 ‘호그와트 레거시’가 ‘해리 포터’ 시리즈라는 IP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원작자 조앤 롤링이 현재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TERF’로서 보여주는 행보가 많은 반발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게임계가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요소의 삽입으로 인해 논란이 된 적은 있어도, 이를 배척하는 원작자 때문에 게임 외적으로 수난을 겪는 것은 이례적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기사를 통해 이야기한 ‘많은 사람들이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이 프랜차이즈에 대한 깊은 애정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자신의 지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구절이 매우 와닿는 부분이다.

일단 ‘호그와트 레거시’는 게임 내에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배치하며 조앤 롤링의 의사에 반한다는 것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다. IP를 둘러싼 논란을 전부 이겨내고 시리즈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워너브러더스 게임즈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