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 대응 등을 놓고 미묘한 긴장 관계를 보이던 집권 여당과 대통령실이 결국 정면으로 부딪쳤다.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시절부터 2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며 '황태자'로 불려온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충돌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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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21일 한 위원장에게 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이 이를 곧바로 거부하면서 총선을 80일 앞둔 여권이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날 취임한 지 26일밖에 되지 않은 한 위원장에게 사퇴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데는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한 위원장의 대응이 직접적 배경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은 '몰카 공작', '함정 취재'가 본질이고 김 여사는 피해자로 봐야 하는데 당에서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을 놓고 대통령실의 불만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최근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응을 강조해왔다. 특히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의원총회에서 "정치공작의 본질 정확하게 알고 대응하자"며 내부에서의 정제된 발언을 요청했는데도 한 위원장이 영입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나 당 인재영입위원으로 활동 중인 조정훈 의원 등이 여전히 김 여사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한 것이 대통령실의 '행동'을 촉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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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부 분위기는 이날 오전부터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이용 의원은 이날 의원 텔레그램 대화방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위원장의 줄 세우기 공천 행태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당선인 시절 수행팀장을 지내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이 의원이 이런 기사를 공유하자 당에서는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며 술렁이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위원장이 최근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천 계양을 출마를 공개 지지한 것을 두고 시스템 공천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해당 지역구 출마 준비자 등을 중심으로 나오던 터였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도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면 특혜처럼 보이지 않도록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지역 등을 선정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이례적으로 밝힌 것도 한 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온도차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보도를 두고 연합뉴스에 "이른바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관섭 비서실장과 한 위원장의 만남에 대해 "만남 자체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 소통의 일환이었다"며 한 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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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원장은 당정 갈등에 대한 보도가 확대 재생산되는 가운데 "국민 보고 나선 일, 할 일 하겠다"며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비대위원장직을 이어가겠는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윤심'에 의해 법무부장관에서 여당 당대표로 낙점됐기에 리더십의 손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한 위원장이 김 여사 의혹 대응을 시작으로 여러 현안에서 홀로서기를 이어가며 당정 관계 재정립을 시도한다면 '尹 아바타' 오명에서 벗어나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을 이루는 동시에 차기 대권 후보로 거듭날 기회라는 게 중론이다.

이같은 돌발 사태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위기 탈출 및 총선 승리를 위한 ‘약속대련’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식점에 주방은 하나인데 전화받는 상호와 전화기가 두개 따로 있는 모습으로 서로 다른 팀인 척해서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록은 동색이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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