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공효진 그리고 안소희.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웰메이드 감성 드라마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가 17일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완성도 높은 각본, 섬세한 감성 연기, 색다른 로케이션으로 올 봄 극장가에 깊은 여운을 전할 채비를 단단히 마쳤다.

영화 '싱글라이더'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가장 재훈(이병헌)이 부실 채권사건 이후 아내 수진(공효진)과 어린 아들을 찾아 호주로 사라지면서 충격적인 비밀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회사가 하루아침에 파산하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짓눌린 재훈은 가족이 있는 호주로 훌쩍 여행을 떠나며 '싱글라이더'를 자처한다. 하지만 타지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아들을 호주에 보낸 2년 동안 아내 수진(공효진)이 이웃의 백인 남자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재훈은 그간 경제적인 윤택함 이면에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던 아내와의 관계를 발견하며 충격의 수렁에 빠진다.

호주 거리를 정처없이 거니는 재훈의 뒷모습엔 현대인에게 찾아볼 수 있는 애환이 매달려 있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혹사하는 삶이라면, 과연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싱글라이더'는 현실과 타협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던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 한 가장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행복이란 어떤 모습인지, 나 혼자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게끔 만든다. 

 

 

한 남자의 심리와 감정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영화에서 이병헌의 눈빛 연기는 빛을 발한다. 아주 미세한 감정 변화와 근육의 떨림까지 놓치지 않고 섬세히 연기해내는 이병헌의 내공은 이 영화의 신뢰도를 높인다. 후반부 반전을 앞두고 절정으로 치닫는 감정 연기는 관객의 눈물샘까지 자극할 정도다. 16년 전 애틋한 로맨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 이은 감성 캐릭터를 만난 느낌이다.

인위적인 기교 없이 담백한 연출만으로 이병헌의 정교한 감정 연기를 담아낸 이주영 감독의 연출력 또한 두드러진다. 재훈의 눈높이에 따라 변화를 맞이한 가족은 물론, 호주의 광할함을 바라보는 카메라워크는 관객의 몰입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시종일관 흔들리는 재훈의 눈빛과 상반되는 호주의 잔잔하면서도 눈부신 자연 풍광이 대조를 이루는 점은 놓치면 안될 관전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현지 로케이션이 자아내는 이국적인 분위기, 계절을 달리하는 한국과 호주의 모습은 재훈과 가족의 이질감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안락한 주택 단지, 시드니 본다이 비치, 멜번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 남단의 섬 타즈마니아 등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호주 영화에서조치 허가가 나지 않아 촬영이 힘들었던 하버 브릿지,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까지 영화에 담아내 시각적 즐거움을 한껏 선사한다.

여성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명의 여성감독이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치는 것 또한 주목할 점이다. 광고계에서 오랫동안 단련한 미장센으로 충무로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이주영 감독이 강렬한 데뷔작의 메가폰을 잡았다. 러닝타임 1시간37분. 15세 이상 관람가. 2월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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