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리스트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현장에서 특별한 듀오를 만났다. 김조광수(52·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33·레인보우 팩토리 대표)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오는 11월2일 개막하는 제7회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두 사람은 각자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따로 또 같이 부산에 ‘퀴어’의 씨앗을 유쾌하게 뿌리는 모습이다.

 

 

내년 1월 개봉할 이선균 주연·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 구정에 선보이는 김명민·오달수·김지원 주연 ‘조선명탐정 3’ 편집 작업과 프라이드영화제 개막 준비에 한창인 영화제작자 겸 감독인 김조광수 대표는 영화 투자 관련 미팅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

“영화감독협회 등 3개 단체의 보이콧이 진행되고 있어서인지 예년과 달리 감독들을 비롯해 제작자 등 영화인들이 많이 안보이네요.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죠. 반면에 상영관에는 관객들이 꽤 많아요. 여전히 열광하고 있고요. 부산시와 박근혜 정부의 BIFF에 대한 탄압 이후 양극화된 양상이네요. 빨리 정상화가 돼야할 텐데...문재인 대통령이 영화제를 찾아 정상화에 대한 약속을 하셨으니 기대를 하게 되고요.”

김승환 대표는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상영에 앞서 BIFF 플래쉬 포워드 섹션에 초청받은 ‘톰 오브 핀란드’ 상영 및 주연 여배우 제시카 그라보프스키 내한 무대인사를 진행하기 위해 부산에 머무는 일정이었다. 틈틈이 프라이드영화제 홍보 브로셔를 여기저기 뿌리고 알려나가는데 여념이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제작자, 해외 영화인, 실무자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라 서로를 알리기에 최적의 장소죠. 프라이드영화제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이곳에서 열심히 홍보해야죠. 다행히 ‘톰 오브 핀란드’가 부국제에서 2회 상영되는데 14일 첫 상영이 매진됐을 만큼 반응이 좋네요. 게이포르노를 예술로 승화시켜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20세기 핀란드 작가 투코 락소네에 대한 이야기에요. 극적인 장치들이 매우 많은 전기 영화죠.”

 

 

재작년 무렵, 김조광수 대표는 당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BIFF에 ‘퀴어섹션’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아직은 미약한 국내 퀴어영화의 활성화와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 고취 등 여러 가지 목적이 담긴 프러포즈였다. 이 집행위원장은 곤혹스러운 표정과 함께 껄껄껄 웃으며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거절했다.

“베를린, 칸,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도 가장 핫한 프로그램과 파티를 접할 수 있는 데가 퀴어 섹션이거든요. 내년에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한번 더 건의해보려고요. 그래도 안 된다면 전주나 부천 등 다른 영화제에 제안해야죠.(웃음)”

BIFF에 몸은 있지만 마음은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프라이드영화제에 가 있다. 전 세계 30개국, 70편의 퀴어영화가 소개된다. 개막작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3개 부문(심사위원 대상·퀴어종려부문·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로빈 캄필로 감독의 ‘120 BPM’이다. 1989년 파리를 배경으로 에이즈 확산에도 무책임한 정부와 이윤만 추구하는 제약회사에 대항하는 ‘액트 업 파리’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점점 상영작 수도 많아지고 관객도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에요. 시작할 때만 해도 퀴어영화제는 성소수자만 가서 보는 영화제 혹은 골수팬들만 가는 곳으로 여겨졌는데 재작년부터 대중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은 듯해요. 개막작인 ‘런던 프라이드’, 폐막작인 줄리엣 무어의 ‘로렐’ 영향이 컸죠.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작년부터는 CGV 명동역에서 열리고 있어요. 멀티플렉스에서 하다 보니 일반 관객도 퀴어영화를 자연스레 접하면서 인식도 바뀌는 것 같아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프로그램이겠죠.”

 

 

특히 프라이드영화제를 꾸준히 주최해오면서 해외 영화계에 신뢰를 구축, 지난 2015년부터 양질의 프로그램 협상이 가능해지면서 작품의 질이 쑥 올라갔다. 편수 20편 남짓에서 70편으로 늘어 선택의 다양성이 확보됐다. 지금은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도 프라이드영화제를 대거 찾기에 이르렀다.

“규모를 키우며 다양하고 대중적인 퀴어영화를 소개하고 싶은데 예산부족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요. 다른 영화제들처럼 지자체 지원이나 기업후원이 적으니까요. 아직은 보수적 분위기의 지자체들이 퀴어영화제를 지원하기엔 어렵고, 기업의 젊은 과장급들은 후원하고 싶어 하는데 나이 드신 임원급은 소비자들이 싫어할 거란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스태프들이 여전히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죠. 그럼에도 꽤 많은 협찬사들이 확보됐고 현금 후원도 늘려가고 있어요.”

해외 퀴어영화계와의 힘찬 협업도 힘을 보태주는 요인이다. 2015년 발족한 ‘아시아태평양 프라이드 영화제 연맹’에 현재 13개국이 가입돼 있고 17개 영화제가 열리는 중이다. 이사국 4개국(한국 일본 대만 홍콩)에 김승환씨가 한국 대표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연맹에서는 프로그램 제휴를 비롯해 각 나라 신진 퀴어영화 감독을 발굴하고 영화제를 통해 서로 소개해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각국 퀴어영화제 관계자들이 자기네 영화제에 후보군을 만들어서 소개해주기도 하고요. 올해부터는 연맹 차원에서 극영화 작품상·다큐멘터리 작품상·단편상 3개 부문을 신설, 올해부터 시상식을 마련해요. 이달 말 대만에서 처음 열리는데 한국영화로는 단편 ‘모모’(감독 장윤주)가 노미네이트돼 있어요.”

 

 

아시아 국가 가운데 김조광수 김승환 대표가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곳은 대만이다. 퀴어영화 제작이 활발한데다 일반 상업영화와 어깨를 겨루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랭크되는 경우가 빈번해서다. 그만큼 대중적 소비가 왕성하다는 의미다.

“올해 대만은 동성결혼 법제화가 이뤄졌잖아요. 성소수자, 동성애에 대해 열려 있는 사회란 의미겠죠. 이성애자 관객들이 동성애 영화를 거부감 없이 바라봐요. 상업영화계 안에서 소비되고 만들어지니까 부럽죠. 한국보다 더욱 보수적일 것만 같은 중화권이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오픈마인드예요.”

지난해 12월 법원은 2013년 9월 결혼한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동성 혼인관계 신청을 각하 결정했다. 1심에 이은 판결이었다.

“현행법상 법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해결하라인데, 동성혼 문제가 정치적인 영역으로 가버렸어요. 후퇴한 게 아니라 나아가는 중이라고 봐요. 대선후보 토론 당시 동성애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던 것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정치인들이나 국민들도 과거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변화한 게 아닐까요. 성소수자 인권신장에 있어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기인 듯해요.”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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