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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타' 김주혁을 떠나보내며...

한 배우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제가 초등학생이던 1998년 데뷔를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그를 알게 된 건 아마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2005년 겨울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꽤 추운 날, ‘오늘은 또 뭐하고 놀까’를 고민하던 저는 평소 잘 가지 않던 극장에 가보기로 결심했고 그곳에서 배우 김주혁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혼영’이라는 게 익숙하지 않은 시기라 주위 시선이 민망하기도 했고, 또 저도 영화에 ‘1’도 관심이 없어서 무엇을 봐야할지 한참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아마 그때 극장엔 ‘해리포터’가 걸려 있던 걸로 기억하지만, 제 선택은 한때 ‘논스톱 4’에서 큰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 봉태규가 출연한 ‘광식이 동생 광태’였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답답한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형 광식(김주혁)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마음고생만 하는 인물이고요, 동생 광태는 예쁜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자유연애주의자입니다. 스토리만 봐도 형은 플라토닉 러브, 동생은 에로틱 러브의 대표격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사실 열다섯 사춘기 시기의 남자라면 으레 광태의 사연에 열광하고 집중하고 응원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는 어쩐 일인지 광식이의 사연에 조금 더 공감 되더군요.

광식이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답답합니다. 1997년 새우깡이 400원이던 시절부터 후배 윤경(이요원)을 좋아하던 그는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해보지도 못하고, 윤경을 향한 친구의 고백에 기타반주를 쳐주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요.(물론 그 친구와 윤경이는 잘 되지 못합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2003년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지만 광식이는 누가 봐도 열렬한 대쉬를 하는 윤경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이번에도 역시 속만 태웁니다.

답답하고 찌질하고 궁상맞은 모습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 광식이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여자랑 실컷 자고 깔끔하게 헤어질까’를 고민하는 동생 광태보다 더 로맨티스트 같았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 저는 ‘광식이처럼 살고 싶다. 내 진심을 알아줄 여자를 만나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래서 이 작품은 아마 2006년부터 이어질 제 지루한 짝사랑의 원인을 제공한 영화인지도 모릅니다.

 


그때부터 저는 김주혁이란 배우에게 빠지게 됐습니다. 이후 그가 출연했던 ‘YMCA 야구단’ ‘싱글즈’ ‘홍반장’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지요. 물론 ‘광식이 동생 광태’ 만큼의 감흥은 없었고 제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캐릭터도 많았습니다만, ‘참 멋있는 배우’라는 생각만큼은 확고해졌습니다. 이후 ‘청연’ ‘사랑따윈 필요 없어’ ‘아내가 결혼했다’ ‘방자전’ 등에서 진지한 배역부터 한없이 찌질해졌다가도 섹시한 캐릭터까지 유려하게 소화하는 모습은 제 빠심을 더 자극했습니다. 특히 멜로나 로맨틱코미디영화를 선호하는 제 취향은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대학에 들어가고, 영화나 TV보단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걸 더 좋아하게 되면서 ‘방자전’을 마지막으로 제 팬심을 드러냈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기사로 그의 활동을 간간이 알게 되는 수준이었지요. 제가 군인시절이던 2011년엔 ‘커플즈’라는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에 괜히 반가웠고, 전역하고 한창 놀러 다닐 때에는 KBS 예능 ‘1박 2일’에서 활약하는 그의 기사가 연일 쏟아지기도 했었습니다. 제 기억 속 최고의 로맨티스트가 ‘구탱이 형’이라는 묘한 별칭으로 불리는 게 재밌기도 했고,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저에게 김주혁이란 배우는 너무도 애틋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기자로 활동하면서는 조금 더 그의 소식을 접하곤 했습니다. 특히 올 초 ‘공조’와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 악역 변신은 다시 한 번 제 ‘빠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그리고 좋은 계기로 ‘석조저택 살인사건’ 당시 김주혁 배우와 인터뷰를 하게 됐었지요. 빠심을 감추고 마주한 그는 여전히 젠틀하고 멋졌지만, “악역을 하면서 연기가 더 재밌어졌다”는 말에선 왠지 모를 서운함도 밀려온 건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예전의 순수함을 잃고 세상에 찌들어 변한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서운함이랄까요.

너무 짧은 한 시간의 인터뷰가 마무리 되고, 담배를 태우러 바깥으로 나가는 그의 뒤를 쫓아 나갔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팬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없어서 멀찍이 쭈뼛쭈뼛 거리는 제게 그는 먼저 환한 미소로 “오늘 재밌었어요”라고 말을 해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말에 용기를 낸 저도 “저 정말 ‘광식이 동생 광태’ 때부터 너무 팬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지요. 괜히 “DVD도 갖고 있는데...”라는 사족까지 덧붙이면서요. 그런 제게 그는 “다음엔 싸인 크게 해줄게 갖고 와. 안 가지고 오면 내가 더 실망할 거야”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때는 진정 제 기억 속 ‘광식’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흡연장에서의 짧은 팬미팅은 또 한 가지의 약속이 더해지며 끝이 났습니다. “아직 기자님처럼 광식이 같은 모습 좋아해주는 팬들이 많은 것 같아. 내 나이 먹고 좀 우습지 않을까? 하하. 기회가 되면 40대 광식이를 해봤으면 좋겠는데... 그때도 꼭 인터뷰 오셔야 돼.” 야속한 담배는 왜 이리도 빨리 타는지, 다시 실내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그럼 그때 봬요”라는 말을 전할 수밖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약속은 이제 이뤄질 수 없게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제(30일)의 비보는 유독 제게 더 아쉽고 크게 다가옵니다. 한국영화계의 재능이 져버렸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제 오랜 팬심의 상실감이 큰 까닭이겠지요. 그래서 몇 달 전 환히 웃던 그의 얼굴은 아마 꽤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를 사랑했던 많은 팬들에게도 그렇겠지요. 너무 일찍 곁을 떠난 그의 빈자리가 왠지 유독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광식이 동생 광태' '공조' 스틸컷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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