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 나잇’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아픔을 당연시하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을 건네는 작품이다.
 

‘스파 나잇’은 LA에 살고 있는 한국계 이민자 데이빗(조 서)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별다른 꿈도 희망도 없다.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데이빗은 남성 목욕탕에서 야간 알바를 시작하고, 동성애자들의 은밀한 만남 장소였던 그곳에서 비밀스런 유혹에 이끌리기 시작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의 삶을 포착한 ‘스파 나잇’은 생경하면서도 익숙하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자란 데이빗은 늘 어중간한 위치에 서있다. 미국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친구 에디(태 송)의 모습과 달리 그는 한글 간판이 잔뜩 걸린 한인타운을 맴돌고, 또 한국말이 익숙한 부모의 가치관과 열여덟 해 동안 스스로 구축한 정체성은 그 간극이 꽤 널찍하다.

이는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익숙한 '아픈 청춘'의 모습이다. 삶에 치인 부모는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서 큰 일을 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며느리를 보길 원한다. 반면 자식은 대학에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에, 미래보단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 더 고민하는 청춘이다. 더구나 그는 게이다. 국적, 성정체성, 힘든 가정환경 등 한 소년이 지기엔 너무 가혹한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뿐이다.

 

앤드류 안 감독은 그 소년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곧추세워 나가는지 과묵한 문법으로 바라본다. 이는 영화 속 캐릭터들의 관계와는 사뭇 다른데, 부모는 그에게 늘 “비싼 돈 주고 간 학원인데 열심히 해”라며 공부를 억압하고, 친구들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강요하는 등 데이빗 스스로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묵묵한 시선은 언뜻 위로처럼 비친다.

사실 감독이 영화 속 데이빗의 서사에 동성애 코드를 넣은 지점은 어쩌면 ‘성장’ 코드를 부각시키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와 다른 스스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그만한 설정도 없다. 이 대목에서 데이빗의 연기를 맡은 배우 조 서의 연기가 빛난다.

가정형편에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목욕탕 일이지만, 그곳에서 데이빗은 남자 손님들의 은밀한 행위를 지켜보면서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다. 이는 목욕탕 밖,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가 느끼는 관계의 확장판처럼 보인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동성애 행위 적발‧공부)과 하고 싶은 일(동성애 욕망‧돈을 버는 일) 사이에서 경험하는 감정의 파고는 마치 한편의 독백극을 보는 듯 세밀하다.

 

서사의 세세한 결말은 스포일러가 되기에 적을 수 없지만, 명확한 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그의 삶이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데이빗은 서사 내내 모든 고민을 떨쳐내기 위해 뛰고 또 뛴다. 특히 빈 거리를 전력질주하는 엔딩 시퀀스는 마치 프랑스 고전 명작 ‘400번의 구타’ 엔딩신을 보는 듯 지난하다. 좁은 카메라 프레임은 그를 구속하려는 듯 끝까지 쫓아간다.

하지만 유독 마지막 장면, 카메라를 따돌리고 나아가는 데이빗의 뜀박질에선 묘한 기대감이 샘솟는다. 물론 카메라 밖으로 나가버린 그가 어느 방향으로 뜀을 시작했는지 관객들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곳으로 뗀 첫 걸음이 바로 성장의 시작은 아닐까. ‘스파 나잇’은 그 시작을 응원하는 영화다.

러닝타임 1시간36분. 청소년 관람불가. 11월2일 개봉.

 

 

사진='스파 나잇'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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