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540만 시대, 개인의 풍족한 삶에 치중하는 ‘욜로(YOLO)’ 열풍이 거세다. 최근의 비혼 청년들이 개인주의적인 생활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노선을 걷고 있는 청년들도 존재한다. 편의점 음식에 길들여지기 보다는 함께 지은 따뜻한 밥을 나눠먹고, 휴대폰에 탐닉하기보다 밤새도록 도란도란 대화하는 즐거움을 아는 이들이다.

 

 

농도상생 마을 ‘밝은누리’는 서울 강북구 인수동 청수탕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다. 낮은 담장 너머 마당을 들여다보는 풍경의 마을이 아니라, 여러 빌라 건너건너에 공동체 일원들이 모여있는 형태다. 이들은 서로를 돌봄으로써 '상생'한다. 여러 차례 ‘마을 밥상’이라는 공간에 모여 일상을 공유하고, 각자의 방에 돌아가도 곁에는 또래의 룸메이트들이 있어 든든한 생활이다.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이 만연한 ‘밝은누리’ 공동체에서, 만족스러운 일상을 지내고 있다는 비혼남녀 3명을 만났다. 틈 날 때마다 모여 만들었다는 이 마을의 핫 플레이스인 찻집 ‘마주 이야기’에서 이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맑고 향긋한 꽃차와 바삭바삭한 스콘이 밝은 누리 사람들의 건강하고 따뜻한 기운을 전해왔다.

 

Q.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신영(27, 회사원) : 이 마을에서 함께 산지 3년 정도 됐을 거예요. 직장에 출근하고 주말에는 마을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요. 지금 저와 같이 비혼인 언니들 2명과 동생 1명, 이렇게 넷이서 한 집에 살고 있어요

명연(33, 회사원) : 인수마을에서 비혼청년 셋과 같이 살고 있어요. 이곳에 온지는 만 5년 됐네요. 평일에는 을지로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7년차 직장인이에요. 주말마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삼일학림'이라는 고등대학 통합과정 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선아(41, 찻집 운영) : '햇봄'이라는 자매방에서 비혼 동생 3명과 함께 살고 있어요. 병원에서 15년 정도 근무하다가 '마을 찻집 마주이야기’를 꾸리게 되어서 올해 2월부터 '찻집지기'로 일하고 있어요. 건강한 차를 우리고, 함께 곁들여 먹기에 좋은 빵을 구워요.

 

 

Q. 공동체 생활을 시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명연 : 마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홀로 원룸에서 살았어요. 신입사원이라 야근이 이어졌죠. 빨래나 설거지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요리를 좋아하는데도 귀찮으니까 주로 사먹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위기감을 느꼈어요.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 같아서, 누가 곁에서 도와주고 지켜봐줬으면 좋겠더라고요. 평일, 주말 함께 몸을 부대끼면서 고민을 얘기하고 밥도 해먹고,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관계를 원하게 됐죠.

선아 : 저도 명연이랑 비슷해요. 같이 살던 친언니가 결혼해서, 부모님과 같이 지내다가 기독청년 아카데미라는 배움터를 알게 됐어요. 역사, 철학, 교회사 등 여러 유익한 배움들을 공부하며 지금 이시대를 읽을 수 있는 눈이 조금씩 생기면서 내가 큰 흐름에 밀려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이 와 닿아 공동체를 꿈꾸게 됐어요. 이곳을 알게 되면서 힘차게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이 생겨났어요.

신영 : 대학시절 기독교 동아리 간사님을 통해서 이곳을 알게 됐어요. 직접 방문도 해보고, 초대도 받아서 1박2일 생활해보기도 했죠. 졸업 후 취직을 하면 하루 종일 회사에 있을 터라 집에 오면 뭔가를 더 해야겠다는 힘도 안 생겨서 무기력하게 지낼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생기가 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이곳에 오게 됐고요.

 

Q. 공동체 생활은 어떤 식으로 돌아가나요?

명연 : 남성 방과 여성 방으로 나눠서 다양한 공간에서 비혼 청년들이 모여 지내요. (삭제) 함께 보증금을 모아서 빌라 같은 곳에 전세로 지내고 있어요.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거고, 새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변동이 계속 생겨요. 생활은 특별하진 않아요. 비혼 청년들이 모여서 같이 밥도 해먹고, 평일에는 마을 밥상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해먹기도 해요.

신영 : 주중에는 다들 직장에 다녀요. 평일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서 주말마다 일부러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해요. 가끔은 다른 자매방 사람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주말에 다같이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다니고, 친한 친구들끼리 노는 것처럼 지내요.

명연 : 학생 시절에도 방세를 아끼기 위해 친구들이랑 여러 번 같이 살았어요. 그때와 달리 지금은 돈을 아끼려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에요. 더 잘 살기 위해 함께 지내는 거죠. 3명이 살 때 방이 3개여도 방 하나씩을 쓰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온 거니까, 자는 방, 공부하는 방, 이런 식으로 방을 나눠서 함께 생활해요.

 

 

Q. 공동체 생활을 하며 정한 규칙이 있나요?

선아 : 가장 기본적인 건 사람이 배워야할 도리, 기본적인 예에 대해서는 다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상대방을 이해하며 존중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거죠. 자신이 말하고 지키겠다 하는 것만큼은 힘써 지켜나가려고 해요. 옆에서는 친구들이 함께 지켜갈 수 있도록 돕구요. 타인에 의해 설정한 규칙이 아닌 자기 고백이 담긴 규율. 그것이 중요하죠. 

명연 : 집에 몇 시까지 들어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그런데 표면적으로 정해놓은 규칙은 없어요. 그렇다고 무질서하진 않아요. 다들 정갈하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죠. 타인을 배려하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런 건 필요하거든요.

신영 : 최소한의 약속이라면, 방마다 달라요. 방 멤버도 자주 바뀌다 보니, 고정적으로 정해놓은 건 없지만 방을 누가 언제 닦는지 정도는 정해놓죠.(웃음) 서로 편하기 위해서 그 정도 규칙을 만드는 거지, 강요하진 않아요.

명연 : 예를 들면 혹시 내가 옷 벗어서 아무데나 두면 얘기해달라고 부탁하죠. 자기 생활은 당연히 자기가 알아서 잘 해야 하지만, 그런 부분만큼은 서로 따끔하게 얘기해줘요. 앞서 말했듯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함께 사는 건 아니니까요. 더불어 살면 내 부족한 점이 계속 드러나니까 스스로 보완을 하고 성숙해지는 게 가능하거든요. 

 

②편으로 이어짐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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