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52) 금융감독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금융기관 등 피감기관 예산으로 세 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유럽 방문 때 동행한 여비서가 정책비서가 아닌 인턴신분이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사진= 연합뉴스

김 원장은 국회 정무위원(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재직하던 2014년 3월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갔다. 한국거래소가 항공료(약 220만원)와 식비, 숙박비 등을 댔다. 이 출장에는 현재 청와대 선임행정관인 홍일표 당시 보좌관이 동행했다.

2015년 5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지원으로 미국과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등을 9박10일간 돌았다. 김 원장이 의원 시절 그를 수행한 또다른 보좌진(정책 비서)이 동행했다. 두 사람을 위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쓴 비용은 3077만원이었다.

김 원장은 같은 달 2박4일 간 우리은행의 충칭분행 개점식 참석 등을 위해 중국과 인도를 돌아보는 출장도 다녀왔다. 우리은행이 출장비 전액을 댔고, 이 출장에도 홍 보좌관이 함께 갔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권은 일제히 피감기관의 로비에 따른 외유라고 성토하고 있다. 김 원장은 8일 입장문을 내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사과하면서도 “공적인 목적의 출장이었다”고 해명했다. 야당의 사퇴 요구는 거부했다.

입장문을 보고 먼저 드는 의구심은 “사적인 목적의 출장도 있는가”다. 사적으로 가는 건 외유이고 여행이다. 쓸데없는 언어유희다. 다음으로는 출장의 적절성이다. 일단 피감기관의 돈으로 간 것은 부적절한 게 원칙론이다. 더욱이 미국 출장은 김 원장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 운영이 불투명하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KIEP가 “직접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잡아달라”고 김 원장과 당시 여당 의원에게 요청해 이뤄졌다. 이후 다른 의원은 막판에 출장을 철회했고, 김 원장만 보좌진을 데리고 유럽까지 총 9박10일 출장을 다녀왔다. 여야 의원이 함께 가는 관행까지 깨고 혼자 다녀올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유럽행의 경우 김 원장이 KIEP 유럽지부 설치를 검토하기 위한 것으로, 다녀온 후 지부설립에 반대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KIEP의 로비를 거절했다는 말인데 그런 의도를 알았다면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했다. 굳이 3000만원이 넘는 엄한 예산을 낭비해야만 했을까.

또한 미국·유럽을 다녀오자마자 중국·인도 출장을 갔다고 하니 국가원수의 해외 세일즈 외교도 아닐텐데 국회의원이 국내 정치일정을 내내 비운 채 해외출장에 매달려야 했을 만큼 절박한 사안인지도 의문스럽다.

미국·유럽 출장 당시 동행한 인물에 대해 김 의원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총괄하는 정책비서”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수련과정에 있는 인턴이었다. 특히 고액이 들어가는 미국·유럽출장일 경우 주최측에서 통역, 현지 일정 안내 등을 지원해주므로 본인이 스스로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비즈니스 출장’이 합리적이다. 내 돈 아니라고 비서(혹은 보좌관)까지 동행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김 원장이 언급한 ‘국민 눈높이’다. 언제부터 그는 국민과 눈높이가 달랐나?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고,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금수저인 판사·검사·기업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닳고 닳은 정치인이 아니어서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 정책위원장 등을 거쳤고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등 밑바닥 시민사회단체에서 ‘굴렀던’ 흙수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그에게는 ‘개혁’ ‘원칙’ ‘청렴’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저승사자’로 불렸다. 그랬던 김 원장의 세 차례 해외출장에서 보여준 태도는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와 한참은 어긋나 보인다. 시민들과 함께 활동했던, 그 대열에서 정치권으로 넘어온 지 3년 밖에 안 된 사람이라곤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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