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말한다.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고맙지만 죄스럽고, 부담스럽다. 자식은 말한다. "이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이야"라고. 미안하고 원망스럽다. 배신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 봤을 말, 누구나 한번 쯤은 생각해 봤을 말에 대해 영화 '레슬러'는 화해의 악수를 건네 보자 한다.

'유해진 표 코미디'를 들고 온 '레슬러'는 과거 레슬링 국가대표였지만 현재는 아들 성웅(김민재)만 바라보며 그를 뒷바라지하는 귀보(유해진)의 일상을 그린다. 귀보의 특기는 살림, 취미는 아들 자랑이다. 누굴 닮았는지 나가는 경기마다 승승장구하는 아들 성웅은 그의 유일한 꿈이다. 아들이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만 고대한다.

그렇기에 귀보는 희생한다. 오래 전 아내와 사별한 후 혼자서 집안일을 모두 책임진다. 아들에겐 따뜻한 고봉밥을 내어 주지만 자기는 다 쉰 찬밥을 먹는다. 그러다 탈이 나도 아들이 알면 경기를 망칠까 절대 알리지 말라 신신당부한다. 성웅을 국가대표로 키우기 위해 돈도 열심히 번다. 운동 경력을 자본 삼아 체육관에서 청년들에겐 레슬링을,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에어로빅을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태풍이 분다. 성웅의 친구이자 자기에겐 친딸 같은 가영(이성경)의 사랑 고백이다. 설상가상으로 가영을 마음에 품고 있던 성웅이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점점 엇나가는 성웅의 모습이 귀보는 답답하다. 귀보는 성웅과 화해하고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다가오는 5월 가족의 달을 맞아 다양한 가족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레슬러' 역시 그중 하나다. 사춘기 아들과 소통에 서툰 아버지의 갈등을 통해 가족애와 성장을 그린다. 두 부자는 서로를 사랑하기에 희생하고, 희생하기에 사랑한다. 어느 순간 자신의 꿈보다 상대의 꿈을 위해 달리면서 정작 스스로는 등한시한다.

'레슬러'의 갈등 전개와 해결 방식은 단순하다. 신파와 클리셰가 결말을 이끈다.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납득하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유해진의 섬세한 생활 연기다. 김민재와의 부자 호흡도 우수하다. 김민재는 반항기 넘치는 눈빛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다가도 무뚝뚝한 몸짓으로 유해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여기에 성동일이 가세해 유머 코드를 더한다. 종종 등장하는 황우슬혜가 톡톡 튀면서 유머러스한 감초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첫사랑을 겪는 가영으로 분한 이성경의 연기도 사랑스럽다. 이렇게 '레슬러'는 모두가 편하게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만듦새는 조금 부족한 인상이다. 가족 영화지만 중반부까지는 로맨스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레슬러'의 로맨스는 부수적 요소로 영화를 더 빛내기보다 메시지를 흐리게 하는 쪽으로 흘러 아쉬움을 남긴다. 귀보와 성웅의 갈등의 중심은 레슬링인데, 보조 갈등으로만 그려져야 할 로맨스가 너무 깊이 들어간 탓이다. 삼각관계의 마무리 역시 갑작스럽다.

신파라고 지적하긴 했으나 귀보와 성웅이 화해하는 부분은 따뜻하고 공감이 간다. 그것은 두 사람이 경험하는 감정을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러닝 타임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5월 9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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