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감독이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제주 4·3사건이라는 아픈 역사 사이에 가족 이야기를 녹여냈다.  

사진=(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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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재일조선인 가족사를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들춰내는 작품이다. 제주 4·3사건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개인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비극을 돌아보며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제주도 4·3사건이나 한반도 역사라는 것을 다루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에요. 우리 가족을 보면 아주 특이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음식, 결혼, 딸과 엄마 이야기 등 보편적인 측면을 봐주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인생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 제주도 4·3 사건이 들어가게 됐어요. 깊게는 아니더라도 이 역사에 대해 알고 가는 정도가 되면 좋겠어요"

영화 속에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 2018년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 발표와 조선 국적자에 대한 입국 허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18살에 한국을 떠나 70년 만에 다시 찾게됐고 그를 지켜보는 양영희 감독의 심경은 남달랐다.

"제주도 추도식에 가지 못했다면 영화가 이렇게 흘러가지 못했을 거에요. 입국이 허가된 덕분에 제주도를 방문했고 그전에는 부모님의 고향 정도로 생각했는데 가깝게 느끼게 됐어요. 평화공원을 다시 방문해보고 싶고 제주도의 바람도 다시 느끼고 싶어요. 부모를 이해하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하나의 사회나 국가를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렵다고 느꼈어요. 겸손함과 호기심을 더욱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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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을 수면 위로 올리고 직접 제주도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생생한 증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머니는 제주4·3연구소와 많은 대화를 통해 아픈 과거를 떠올렸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기억은 정확했다.

"영화에서 제주4·3연구소 분들과 대화 장면이 7분 정도 나오지만 실제로는 3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눴어요. 골목이나 나무 이름 등이 나올 때마다 바로 확인했는데 다 맞다고 하셨어요. 70년 전 기억이지만 정확했고 제주4·3연구소 분들이 여러 측면에서 도움을 줬기 때문에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어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독특한 제목처럼 음식이 국적과 이데올로기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어머니가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이를 대하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친숙함을 느낀다. 닭죽은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상징적인 음식이었다.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밥 먹을 때 항상 국물을 먹어야 된다고 말했어요. 제가 도쿄에 살 때도 한 달에 한 번은 택배로 닭죽을 보내줬어요. 어머니의 손맛이 있는 음식이고 사랑이 담겨있어요. 그래서 남편을 위해 닭죽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반대할 줄 알았는데 환영한다는 의미라 좋았어요. 남편은 닭죽을 먹을 때 어머니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외교관처럼 어른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주제로만 대화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사진=(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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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남편과 어머니의 관계는 훈훈했다. 역사적인 사건보다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외교관처럼 중립을 지키며 가족의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야 관객과 사이가 좁아진다고 생각했어요.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족이었지만 남편과의 일화들이 일반적인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요"

②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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