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양영희 감독은 지난 1995년 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 데뷔작 '디어 평양'을 발표한 뒤 '굿바이 평양'을 거쳐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마지막 장을 완성하게 됐다. 그는 높은 완성도를 위해 오랜시간 공을 들였다.

사진=(주)엣나인필름
사진=(주)엣나인필름

양영희 감독이 이번 작품을 편집하는 동안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그를 믿어줬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약 2년동안 편집했는데 전부 이어보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어요. 처음부터 어떤 영화제에서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가족 다큐멘터리의 종지부이자 '디어 평양'의 마지막 페이지인 만큼 납득이 될 때까지 타협하지 않았어요. 한국과 일본 편집 감독이 있는데 충분히 저를 기다려줬어요.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어요"

양영희 감독의 영화를 보면 사진과 내레이션을 통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장면간의 전개를 부드럽게 만들고 정보 전달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실제 사진이 더해지면서 더욱 극에 몰입하게 한다.

"'디어 평양' 때부터 제가 나오지 않아도 내래이션이 또 다른 저였어요. 오래 고민을 하고 만들기 때문에 실제 제작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내레이션에 맞춰서 사진을 가져와요. 화면에 나오고 있는 정보 이외에 제가 느낀 부분을 전하는데 신경을 썼어요. 케이크처럼 관객들의 지식이 겹겹이 쌓일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사진=(주)엣나인필름
사진=(주)엣나인필름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로 투병했고 임종을 맞이했다. 양영희 감독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알츠하이머가 최근 기억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어머니는 6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서 가족이 다 같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죽은 오빠도 살아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평온했어요. 매일 웃으면서 소녀같이 편안하게 지냈어요. 오히려 기억이 없으니까 스트레스가 없었고, 화내는 일도 없어졌어요"

양영희 감독은 재일조선인 귀국 사업으로 북송된 3명의 오빠들과 달리 오사카에서 성장하며 어머니가 북한에 있는 아들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는 어머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남한도 북한도 믿지 않을 수 있는 왜 북한만 믿는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차별이 심했던 1930년대 일본에 있다가 제주도로 넘어갔을 때 아주 기대가 컸던 것 같아요. 평생 살려고 생각했는데 제주 4·3사건을 통해 잔인한 모습을 보고 고향에 대한 향수도 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북한에 희망을 갖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고향과 조국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 이외에는 정보를 차단하고 현실을 외면했던 것 같아요"

사진=(주)엣나인필름
사진=(주)엣나인필름

그러면서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의 유골을 평양에 있는 아버지 묘에 모시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끝으로 그는 앞으로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면서 계속해서 '양영희 다운 영화'를 만들어갈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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