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평범한 동네 친구"같은 이미지라고 말하는 배우 정준원(29)을 만났다. 연극계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 영화 '조류인간'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후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 '채씨 영화방' 등을 찍었으며 최근에는 '박열'에서 김중한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이번에는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을 통해 찌질하면서 능청스러운 '구남친' 창석으로 분했다. 시사회 때 정준원은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와 질문이 낯선 듯 쑥스러운 모습을 보여 신인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런 거 좀 긴장되는 것 같다. 기자들이 질문하는 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고 이런 거.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순 없겠지만, 나는 평범한 동네 친구 같은 이미지인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장난도 잘 치고, 사소한 걸로 다퉈서 싸우고 또 화해하고. 그런 생각을 항상 갖고 있으니까, 질의응답 이런 거 하면 너무 긴장된다. 내가 해도 되나 이런 생각도 든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서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네 개의 에피소드를 엮었으며 그중 정준원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정유미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정유미의 오랜 팬임을 자처해 왔다.

"(정유미를 처음 봤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 팬이었다. 맑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계신 분이어서, 현장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본 그대로여서 깜짝 놀랐다. 워낙 연기도 훌륭하신 선배님이다. 같은 작품에 둘이서, 전남친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게 '이번 생은 성공했다' 이런 느낌이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창석은 유진(정유미)의 찌질한 전 남자친구로, 두 사람은 각각 회사원과 유명 배우가 돼 재회한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 흐르는 은근한 어색함 속에서 두 사람은 추억을 나누려 하지만 눈치 없는 창석의 실수로 유진은 실망과 씁쓸함만 얻게 된다.

"남자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못 하니까, 할 수 있으면 재밌겠다 싶었다. 내가 장난기도 많고 그렇지만 그 정도로 눈치 없진 않다.(웃음) 개인적으로 팬인 선배랑 독대로 같이 작품을 하니까 진짜 팬심으로 보게 되더라. 아무래도 더 긴장하고 어색했는데 이런 것들이 극 안에서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정준원은 '더 테이블'의 매력으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꼽았다. 동시에 그는 네 개의 에피소드 중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얘기했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임수정과 연우진이 출연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혜경(임수정)은 과거 연인이었던 운철(연우진)을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향해 있지만 상황은 복잡하기만 하다.

 

 

"남자보다 여자, 혜경의 입장에서 더 많이 이해가 됐다. 결혼할 남자가 있음에도 전에 사랑했던 사람이랑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게 도의적으로 어긋난 행동이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욕먹을 수 있는 짓이지만 가슴이 아프더라. 그냥 그 상황 자체가. 비슷한 일? 그런 적은 없었지만 괜히 공감 갔다."

처음 연기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 동아리 연극반에서 청소년 연극제를 나가게 됐고, 처음으로 경험한 무대에서 확신을 얻었다.

"'벽과 창'이라는 3인극이었다. 말도 안 되게 했다. 대사도 A4 2장 분량 정도를 까먹었다. 청소년 연극제다보니 관객들이 다 지인이었다. 커튼콜하고 인사하고 박수를 받는데, 나를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뭐든 잘 질려 하는 성격인데 이건(연기는) 질리지가 않는다. 이것만큼 재밌다고 느낀 일이 없다."

 

 

정준원은 당시의 무대를 회상하며 엉망진창이었다고 웃었다. 그는 '벽과 창' 연극을 통해 개인 장려상을 받았지만 아직도 수상을 납득하진 못했다. 작은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지만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정준원은 어떤 사람이 됐을까.

"나도 참 궁금한데,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고 이러진 않았을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외국에 나가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행 다니면서 돈 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관광업종에 종사해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역마가 있어서 한구석에 오래 못 있는다."

10대에는 꿈이었고, 20대에는 노력했다. 이제 30대에 접어 배우 타이틀을 쥐게 된 정준원에게, 배우로서 스스로 바라는 점을 물었다.

 

 

"날 좀 더 믿었으면 좋겠다. 정준원이 정준원을 좀 더 믿고, 확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좀 더 믿고 싶다. 흔들린다. 경험이 많지 않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뿌리가 흔들릴 때가 많은 것 같다. 연기는 정답이 있는 작업이 아니다. 뭐가 조금 더 명답에 가까울까를 택해야 할 때, 나를 한 번 더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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