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에도 국내외 영화계 명망가들부터 패기만만한 신진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화인들이 해운대 일대를 활보하고 있다. 장편 ‘밤치기’(한국영화의 오늘-비전)와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와이드 앵글-한국 단편경쟁)을 진출시킨 정가영(27) 감독 겸 배우도 푸른 떡잎들 중 한 명이다. 14일 부산에 터치다운한 그를 노크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은 처음이라며”며 눈을 반짝인 그는 자신이 주연한 장·단편 영화 속 캐릭터처럼 말간 얼굴(그러면서 섹드립을 치는)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첫 장편영화인 ‘비치 온 더 비치(Bitch On The Beach)’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그려내 주목 받았다. 당돌하고 도발적으로 보일 법한 주인공 정가영을 연기함으로써 인물을 보다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여자 홍상수’란 별칭이 뒤따랐다. 사람을 관찰하는 묘미, 감추고 싶은 의식과 행동마저 드러내는 점에서 스스로도 홍상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다.

‘밤치기(Hit The Night)’는 시나리오 자료조사를 핑계로 호감을 느끼던 진혁(박종환)과 만난 가영(정가영)이 키스, 자위, 첫 경험, 섹스 등 수위 높은 질문 공세를 쏟아내던 중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란 속내를 드러낸 뒤 맞는 결말을 다뤘다. 남녀 역할의 전도, 숨김없는 대화 등 감독만의 개성이 살아 숨 쉰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연상케 하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장편영화를 기획하며 톱스타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담았다.

“비참한 구애의 밤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밤치기’는 ‘그날 밤을 내가 쳤다’란 의미예요. 뮤즈와도 같이 아름다운 남자, 갖고 싶은 남자가 있다면 가영이 할 말은 굉장히 많지 않겠어요? 그를 유혹하기 위해서, 나를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면 먹힐 거란 나름 계산된 가영의 시도가 실패할지 성공할지, 결말에서 밝혀지죠. 술자리에서 한두 번 만났고 작품들에서 너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박종환 배우를 생각하면서 썼고, 그 오빠를 꾀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아요. 언젠가 꼭 한번 작품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남성미, 매력적인 면이 있어요.”

 

 

독립영화 ‘양치기들’을 통해 걸출한 면모를 보여준 박종환은 ‘밤치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재밌다. 스펙터클하다”란 반응을 보였다. 정가영 감독의 작업 특성상 함께하는 배우가 시나리오에 애정을 갖는 게 중요하다. 또 그런 배우들과 주로 작업했다. 그래서 박종환의 말에 기뻤다. 무조건 잘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고 5회차 촬영 내내 그렇게 해줬다.

“‘비치 온 더 비치’ ‘밤치기’ 모두 나의 도발적인 멘트라든지 사람을 당황시키는 말들을 잘 받아줘야 하는 남자 역할이 중요해요. 정말 리액션이 중요하죠. 그래야 그걸 보는 재미가 커지는데 완벽하게 해주시더라고요. 감동적인 한편 민망, 비참할 정도로 가영의 구애에 정색하는 연기는 압권이었죠. 그런 구애를 많이 받아봤던 건지, 나 같은 아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건지...(웃음)”

인터뷰 내내 ‘재미’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던 그에게 ‘밤치기’는 여러모로 각별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살면서 느끼고, 생각해왔던 것들, 극화시키고 싶었던 것들이 다 어우러졌어요. 난 이 작품이 굉장히 재밌어요”라고 거듭 강조한다.

 

 

영화 전반부 술자리 장면에서 집요하게 언급되는 ‘마스터베이션’ 대사의 의도에 대한 질문에 “섹스만큼이나 중요하지만 많이 얘기되지 않는 것, 어쩌면 섹스보다 많은 걸 말해주는 것”이란 야무진 대답이 날아온다. 영리하다. 왜 요즘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본인 이야기가 얼마나 되느냐’예요. 얼마만큼 정가영이 지 얘기를 하고 있을까? 지 얘기 아닌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계속 시나리오를 쓰는 것 같아요.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고요. 연애는 가장 익숙한 이야기이고 감정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겪어온 것들이고. 전 재밌게 여기는 것들만 쓸 줄 아는 작가인 거 같아요. 앞으로도 그 테두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거 같고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보기를 좋아했다. 홍상수, 우디 앨런, 멜로물에 중독되다시피 했다. 대학 언론학부에 입학해서는 ‘출발! 비디오여행’ PD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퇴하고 한예종 영상원 방송영상과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했다. 이곳도 1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 뒀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공부하다가 4~5년 전부터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친구들과 함께 찍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들이 ‘혀의 미래’ ‘처음’ ‘내가 어때섷ㅎㅎ’ 등이다.

한국영화계가 주목하는 젊은 감독군인 남연우 구교환 이환 등처럼 정가영도 연출과 연기를 병행한다.

 

 

“단편 때부터 몇 번 출연했는데 재밌더라고요. ‘비치’도 그렇고 ‘밤치기’도 쓸 때부터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다음 작품도 하게 되지 않을까...단점은 방대한 양의 대사를 외워야 한다는 게 힘들어요. 나머지는 다 즐거워요. 그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를 알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되죠. 스태프 각자가 자신의 포지션에서 열심히 해주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듯해요.”

작품과 촬영 현장을 지배하는 감독으로서 주안점을 두는 점은 뭘까. 스태프들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집중만 해준다면 만족스러운 연출을 했다고 여긴단다.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가장 중시한다. 캐릭터를 그만큼 잘 이해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단편 중에서 ‘내가 어때섷’을 제일 좋아해요. ‘밤치기’와 연결되는 면이 많거든요. 결국에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영화를 통해 많이 위로받는 편이에요. 외로운 인물, 외로운 관계를 다룬 작품에 더 애정이 가는 듯해요.”

5일 동안 부산에 머물면서 15일부터 시작되는 5차례의 프리미어 및 3차례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다. 유명 연예인 보기, 그들과 심야 포장마차촌에서 술 먹기도 위시리스트로 마음에 저장해뒀다. 눈이 또 반짝였다.

 

사진= 한제훈(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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