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이 개봉 첫날(22일) 10만명을 모으며 흥행 신호탄을 쐈다. 액션, 스릴러 등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한 8월 극장가에서 로맨스 영화로 거둔 유의미한 성적표다. 이른바 ‘현실 연애’를 ‘공감 연애’로 정확히 명중시킨 야무진 여배우 박보영의 저력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영화는 3초의 운명을 믿는 환승희(박보영)와 승희만이 운명인 우연(김영광)의 10년에 걸친 첫사랑 연대기다. 번번이 빗나가는 사랑의 타이밍을 코믹함과 애틋함으로 능수능란하게 빚어내는 두 배우의 이중주가 빛을 발한다.

우직하게 승희를 향해 직진만 하는 우연과 달리 복잡한 가정사를 등에 얹은 채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승희의 순간순간 선택은 남녀 관객에게 약간은 다른 온도로 받아들여진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나쁜여자’와 ‘격공’으로.

잘못하면 승희가 못되게 비쳐질 수 있겠다 싶어서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던 친구로 만들려고 부단히 애썼다. 성인이 된 승희와 우연이 헤어지는 장면도 그런 우여곡절이 담긴 신이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승희는 취업에 연거푸 실패한 우연이 친구에게 자신을 원망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는 이별을 통보한다.

“그 대사가 여자들에게는 헤어질 만한 엄청난 이야기인데 남자들은 ‘그게 헤어질 만한 이유냐?’고 받아들이더라고요. 감독님은 남자 시선에서 승희를 보는데 여자인 제 입장에서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어서 ‘승희가 계속 여지를 주는 느낌을 줘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냈어요. 제일 적극적으로 승희를 대변한 거죠(웃음). 스크린에서의 연기는 제 책임이잖아요.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셨다 해도 관객은 모르는 거라 현장에서 적어도 의견 제시를 해야 배우로서 책임지는 거라고 여겨요.”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요즘 극장가에서 보기 드문 로맨스 장르이기도 하지만 승희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전 현실적인 선택에 있어서 우유부단하고 남의 눈치도 많이 봐요. 그런데 승희는 주관이 뚜렷한데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질 않아요. 동경했죠. 원래 수동적인 여자 캐릭터보다는 주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 친구들을 선택해 온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자그마한 체구에 사랑스러운 비주얼로 인기를 사왔지만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연예부 수습기자 도라희(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기숙사 여학생 실종사건에 뛰어드는 주란(경성학교), 괴력의 도봉순(힘쎈여자 도봉순), 귀신과 소통하는 주방보조 나봉선(오 나의 귀신님), 충청도를 접수한 여자 일진 영숙(피끓는 청춘) 등 강단 있는 여성들이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로맨스가 주를 이뤄서 선택의 폭이 훨씬 많죠. 어머니 나이대 분들도 알아봐주시는 등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크고요. 그래서 드라마에선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영화에서는 다른 모습을 드러내거나 제 욕심을 챙기려 했어요. 다른 결을 보여드리려 애쓴 거죠. 그런데 ‘항상 사랑스러운 역할만 하세요?’란 질문에 맞닥뜨리면 내가 변주하고 도전하는 건 나만 아는 건가란 회의에 빠지게 돼요.”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나와 타인, 배우와 수용자간 생각의 괴리가 만만치 않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맡아온 캐릭터들만큼이나 강단 있고 열정 많은 배우임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승희로 사랑을 해보고 나니 제가 했었던 사랑은 보잘 것 없더라고요. 시시하게 끝났고 아프질 않았어요. 제 사랑은 스토리텔링이 없더라고요. 정말 사랑은 타이밍이 중요한가 봐요. 그걸 느끼려면 전지적 작가시점이어야 할 텐데 전 1인칭의 삶을 살고 있으니...외모에 대한 이상형은 딱히 있진 않아요. 승희처럼 ‘3초 만에 반하는’은 아니고 상대를 엄청 지켜보고 대화를 많이 해봐요. 나름 까다롭죠. 저보다 성숙해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김영광과는 2014년 학원 로맨스물 ‘피끓는 청춘’에서 여자 일진과 공고 싸움짱으로 짝사랑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두 번째 만남이어서일까. 극을 시종일관 이끌어가는 남녀 주인공의 호흡과 역량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로맨스물에서 두 배우는 빈틈을 안 보인다. 자연스럽다.

“처음 시나리오에 나와 있던 우연은 찌질한 애였어요. 오빠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잘 생기고 허우대 좋은 사람이 나를 못 잊어서 이렇게까지 있는 게 설득력 있나?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감독님이 영광 오빠에게 맞게 조금씩 수정을 하셨고요. 하면서 느꼈던 건 우연이를 이만큼 잘 표현할 사람이 없겠다예요. 오빠의 웃음이 잘못하면 집착으로 보일 사랑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너무 잘 표현했어요.”

 

 

‘피끓는 청춘’ 당시 박보영이나 김영광이나 힘이 '빡' 들어간 역할을 소화했다. 하지만 쉴 때 김영광은 허당기로 가득했다. 그의 본모습이 뭘 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진짜였음을 이번에 확인했다. 평소에도 장난기 많고 순박한 우연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힘들어간 오빠를 못 볼 거 같아요. 우연이랑 너무 닮아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빠의 매력에 푹 빠질 거예요. 성격과 정말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난 거죠. 오빠가 계산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있는 그대로 그날그날 제 액션을 받아들여서 연기해요. 이번에 좋았던 건 ‘늑대소년’ 때 밥 먹는 신 이후로 생활연기가 너무 어렵고, 내가 못 하는구나 여겼는데 극복해낸 점이에요. 선배님들께 물어볼 때마다 ‘그냥 하는 거’라고 하신 의미를 깨달은 거죠.”

“우연이가 잘 살아야 영화도 잘 된다”는 판단으로 연기에 임했다. 잘 보여야지 하는 욕심도 없어서 서로 배려하며 시너지를 일궈냈다.

“그동안 제가 좋은 상대 배우들을 만났어요. 영화에서 빛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걸 깨닫고 인정해야 해요. 만약 제가 빛나야 하는 역할이었다면 욕심을 가지고 빛나려 했겠으나 이번엔 영광 오빠를 빛나게 해줘야 다 같이 빛날 수 있었던 작품이었거든요.”

스물아홉. 나이에 대한 부담은 없다. 연과 성숙함을 기대했으나 과거와 똑같다. 본질적인 고민 마흔으로 미루기로 했다. 서른이 되면 조금 더 할 수 있는 게 넓어지지 않을까 소망한다. 최근 작품 활동에 성취감을 느낀다. 드라마는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았고 영화도 성장과정 중의 모습이라 만족한다. 올해 드라마 ‘라이브’를 감동적으로 시청해 기회가 되면 노희경 작가의 호출을 받고 싶다는 속내를 슬쩍 내비친다.

사진=지선미(라운드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