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문제’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중요 ‘관전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불문하고 남자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한창 나이에 병역 문제로 공백기가 불가피한 젊은 선수들에게 한 층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응원하는 스포츠 팬들 역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들을 “노력의 대가”라며 축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동기부여’를 하는 것과, ‘특례’만을 바라보며 아시안게임을 ‘병역 기피’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이런 차이를 보는 시선이 아주 날카롭게 드러나는 중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후배에게 혜택은 주고 싶지만…” 승부는 승부일 때 ‘감동’

 

펜싱 남자 사브르의 구본길(왼쪽)과 오상욱이 23일 단체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병역 특례를 놓고 가장 논란이 많은 축구와 야구를 언급하기 전에, 다른 종목에서 불거진 병역 특례 관련 이야기들을 먼저 다뤄본다. 20일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는 같은 한국 대표팀의 구본길과 오상욱이 결승에서 맞붙었다. 오상욱은 이 경기에서 이기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하필 상대가 대회 3연패를 노리는 ‘선배’였다. 

15대14, 승리는 구본길의 것이었지만, 그는 “후배에게 좋은 혜택을 줄 수 있었는데”라며 금메달을 따고도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의 승부는 병역 특례 문제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접전이 거듭된 명승부였다. 경기 막판 오상욱은 14-14 동점 상황에서 동시 타격을 한 것 아니냐고 심판에게 항의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을 “군대 가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비난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군대는 군대, 승부는 승부였기 때문이다. 결국 구본길과 오상욱의 ‘브로맨스’는 이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하며 병역 특례까지 획득,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물론 여기서도 후배에게 병역 특례를 선사하기 위해 분투한 구본길에 대한 비판은 전무했다. '병역특례'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이다. 

 

★’다 놓치고 한 번 남은 기회’ 손흥민의 ‘민심획득’ 이유는?

 

훈련 중인 김학범 감독과 손흥민 황의조(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축구에서는 올림픽 동메달 이상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병역 특례(예술-체육요원 복무)가 주어진다. 2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 나서는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의 와일드카드 손흥민의 마음 속은 지금 누구도 알 수 없다. 현재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인 손흥민은 EPL 토트넘의 확고한 주전으로 승승장구 중이지만, 병역 특례에 있어서만큼은 지금까지 불운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는 홍명보호에 발탁되지 못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소속팀(독일 레버쿠젠)의 반대로 이광종호에 승선하지 못했다. 홍명보호는 동메달, 이광종호는 금메달을 땄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드디어 기회가 주어졌지만, 8강에 그치며 메달의 꿈과 함께 병역 특례도 날아갔다. 올해 러시아월드컵에서도 활약했지만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박지성 등의 특별사례와 같은 병역 특례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이 마지막 기회다. 

병역특례의 마지막 기회라는 무거운 시험을 치르는 손흥민의 ‘재능이 아깝다’며 그의 병역특례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손흥민 병역면제 게임’이라는 비아냥이 나옴에도 네티즌들이 축구대표팀의 금메달을 응원하는 이유는 어쨌든 손흥민이 태극마크를 단 대회마다 ‘승부는 승부’라는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 와일드카드 발탁에 ‘인맥축구’ 논란 대상이 됐던 황의조 역시 예리한 골 감각으로 비판을 불식시켰다. 

손흥민 황의조의 경우 이 같은 모습을 금메달 획득 뒤에도 보여준다면, ‘군 면제를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조명받으며 진정한 ‘까방권(군필자에게 주어지는 ‘까임 방지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야구대표팀, 승리보다도 어려울 ‘싸늘한 시선’ 속에 ‘1패’

 

훈련 중인 야구 대표팀의 오지환. 사진=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26일 대만과의 1차전에서 1대2로 패하며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댓글 중 응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잘됐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축구 대표팀이 ‘손흥민 병역면제 게임이냐’는 일부의 비판 속에서도 응원을 받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회 3연패를 노린다는 다짐은 병역 기피 논란 속에 초라한 대의가 됐다. 

일단 야구대표팀에서 ‘병역 기피 논란’의 주인공들인 오지환(LG)과 박해민(삼성)의 선발이 불씨가 됐다. 이들은 애초에 2017년 시즌 종료 뒤 입대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청과 상무의 지원기간이 마감될 때까지 스스로 입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입대 기회를 스스로 반납’하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만을 바라본다’는 얘기가 불거졌다. 

이렇게 여론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팬들은 26일 1차전을 ‘오지환-박해민을 어떻게 쓰는지 두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켜봤다. 이들은 애초부터 선발 멤버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오지환은 벤치만을 지켰고, 발이 빠른 박해민은 9회 말에야 대주자로 출격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경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첫 경기를 치렀을 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두 선수가 드라마틱한 플레이로 ‘승부는 승부’라며 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비난 여론도 조금 가라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것도 ‘졌지만 잘 싸웠다’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감동의 명승부여야 가능할 이야기다. 

선동열 감독은 이들의 현재 컨디션과 앞으로의 활용도를 생각해 선발했다고 사전에 설명했지만, 일단 1차전 패배로 쉽지 않은 행로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의 ‘활용’이 얼마나 잘 될지 미지수다.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멋진 승부’를 보여줘야 하는 운동선수의 본분 또한 실천하기 어려워진다. “은의환향을 기원한다”는 말부터 “이렇게 기대 안 되는 경기는 처음”이라는 싸늘한 여론이 이미 선수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의 결과에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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