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난 2001년 마약사범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고상학(가명)씨 사건을 밀착 취재했다.

산속 가건물이나 비밀 하우스에서 이뤄지는 산도박은 3분간 하루 최대 300판이 이어진다. 판돈의 규모는 최대 20억에 이른다. 이곳에는 일명 삼치기인 바람잡이들이 있다. 의류 도매업을 하고 있던 고상학씨는 지난 2001년 친한 동생과 함께 이회장을 우연히 만났다. 얼마 뒤 이회장은 집들이에 고씨를 초대했다. 알고 보니 그를 도박의 세계로 이끈 것이었다.

집들이에서 이회장은 카드를 제안했는데 사기도박 일당의 호구를 의미하는 ‘구서방’ 고씨를 선수들이 둘러쌌다. 1번이라 불리는 꽃뱀, 바람잡는 바지, 기술자라는 타짜, 인심 좋게 돈을 마음껏 빌려주는 꽁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꽁지에게 빌린 돈과 타짜에게 잃은 돈이 더해져 구서방은 빚더미에 앉았다.

도박판에서 망을 보고 심부름을 해주는 ‘문방’ 역할을 하던 신모씨로부터 자신이 사기도박에 당했다는 것을 듣게 된 고씨는 이회장에게 항의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돈을 돌려주겠다던 이회장과 만나기로 한 날, 현장에는 낯선 인물과 강력반 형사가 연이어 나타나 고씨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고씨는 "형사가 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뭘 꺼내더라. ‘호주머니에 왜 마약이 들어있냐’고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필로폰 0.3g이었다. 심지어 고씨와 함께 있던 사람은 잠시 나갔다 오더니 상처를 만들어왔고 고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고씨는 전과자가 됐다.

7년 뒤인 2008년 정여사의 등장으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여사가 양심선언을 하려 했던 일은 바로 고상학씨 사건이었다. 사주를 받고 고씨의 주머니에 마약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정여사는 모든 일을 설계한 이는 명동 사채왕 최씨이며 자신이 고상학씨 주머니에 마약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중후반 급성장한 명동 사채왕은 명동의 돈줄을 쥐고 있는 실세 중 실세였다고 전해진다. 1500억원 자산가이며 현금으로만 1000억원을 보유했다고 알려졌다. 2012년 4월 사채왕 최씨가 검찰에 검거됐다. 대구지검에 구속된 최씨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협박을 했다는 공갈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는 ‘사채왕’이란 별명과 혐의 모두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추가로 기소된 죄목은 무려 15가지에 달했다. 그의 이윤 출처는 돈이 급한 도박판이었다.

정여사는 전 재산을 잃고 손해를 만회해볼 요량으로 사채왕이 시키는 일을 모두 했다고 한다. 그날도 사채왕을 따라 다방에 갔던 정여사는 사채왕이 건네준 약의 정체를 일이 모두 끝난 뒤에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고상학씨에게 항의를 받은 이회장은 일을 해결해달라며 사채왕 최씨에게 1억원을 줬다고 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정여사는 늘 자신을 이용만 하던 사채왕에게 불만과 배신감이 커져갔고 2008년 인천지검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결국 최씨 그리고 내연녀 한모씨와 재판을 받게 됐다.

재판에서 마약을 발견했던 강력반 형사 임모씨는 정여사와 달리 그날 다방에서 최씨를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임형사의 진술을 인정했고 정여사 주장을 배척했다. 그런데 임형사의 행동에도 이상한 부분이 있다. 방해물을 제거해야 하는 사채왕과 검거 실적이 필요한 경찰이 서로에게 필요했던 것일까.

오랫동안 사채왕 곁을 지켰던 전 내연녀 한모씨는 제작진과 만나 "14년간 같이 살았다. 비리 백화점이다. 내가 다 안다. 그러니까 날 죽이려고 구속하려고 한 거다"고 말했다. 한씨는 현장에 출동한 임형사와 사채왕 최씨가 미리 시간을 조율했다고 주장했다.

사채왕과 고씨는 일면식조차 없는 남남이다. 사채왕이 고성학씨에게 마약던지기를 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를 통해 확인한 이유는 돈이었다. 사채왕에게는 도박장이 순탄하게 운영돼야 했다. 사기도박을 눈치챈 고씨는 해당 도박장에도, 도박장에 돈을 대는 사채왕에게도 방해물이었을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최씨의 재판이 진행됐다.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그는 사기혐의가 추가돼 서울에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었다. 사채왕의 집 거실 탁자에 있던 나무 그림의 나뭇잎마다 적혀있던 이름은 그의 사업에 방해가 되던 인물들이었다. 사채왕 최씨 살생부에 이름이 올려있던 이들은 대부분 교도소로 갔고 그들을 체포한 이는 임형사였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만난 이들의 이야기는 늘 사채왕에서 비롯됐고 항상 임형사로 끝이 났다. 사채왕 최씨는 수감 중 접견에서 임형사를 찾기도 했다. 임씨는 사채왕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도 경감으로 활동 중이다. 제작진이 고상학씨 이름을 꺼내자 그는 "답변할 사안이 못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2012년 사채왕이 구속수감된 지 3년 후 현직 판사 최씨가 구속됐다. 사채왕 최씨와 먼 친척 관계인 최 전 판사는 사채왕에게 2억68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알선 수재 혐의로 3년형을 받은 최 전 판사는 최근 석방됐다.

지난 2001년 제대로 된 항변도 못하고 법의 심판을 받은 고상학씨. 사채왕 마약 재판에서는 현직 경찰이 사채왕을 위해 증언했고 뒤에서는 판사가 움직였다. 이길 수 없었던 재판인 셈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고상학씨는 재심을 요청했다. 물증 없는 17년 전 사건의 재심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최씨는 자신이 무죄 판결을 받자 이번엔 10억원을 갈취했다며 정여사를 고소했다. 고씨는 이런 정황들을 정리해 재심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재심 결정을 지금까지도 내리지 않고 있다. 재심 판단이 될만한 당시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하급심이 재심을 결정했지만 대법원이 재심을 결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말이 나오고 있다. 현직 판사가 사채왕에게 돈을 받은 것 때문에 머뭇거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양승태 대법원 시절 최 전 판사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자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석기 선고를 앞당기자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민감하게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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