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가 24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폐막한 올해 제70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지난달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을 수상한데 이은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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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감독은 '밤과 낮'(2008), '누구의딸도아닌해원'(2013),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에 이어 네 번째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은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은곰상)을 안겨줬다.

홍 감독은 일상적인 언어와 대화, 인간의 욕망을 정형적인지 않은 연출기법과 장르로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전반기에는 지식인의 위선과 허위의식, 속물근성을 묘파했다면 연인인 김민희와 작업한 이후 남녀의 내밀한 역학관계와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예술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했다. 이후 '강원도의 힘'(1998)과 '오! 수정'(2000) 등에서 인간의 내밀한 위선과 욕망을 까발리며 '홍상수표' 영화를 각인시켰다.

그 뒤에 내놓은 '생활의 발견'(2002)은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됐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국제적인 주목까지 받기 시작했다.

'해변의 여인'(2006),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하하하'(2010) 등 이후 작품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조금씩 변주해가는 한편 반복된 주제 의식과 연출 기법으로 인해 '자기복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홍 감독은 독창적인 연출과 일명 '쪽대본'으로도 유명하다. 그날 촬영할 장면의 대사를 그날 아침에 써서 배우들에게 나눠주는 식이다. 배우들의 실제 말투나 성격, 습관을 극중 캐릭터에 접목하기도 한다. 지난 25일 열린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삶은 어떤 종류의 일반화도 모두 뛰어넘는 것"이라며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모든 일반화와 장르 테크닉, 효과 등을 배제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열고 믿는다"라고 했다.

홍 감독은 유럽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베를린영화제뿐만 칸영화제에도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12년 '다른 나라에서', 2017년 '그 후'를 경쟁부문에 진출시켰다. '클레어의 카메라'(2017)는 칸영화제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선보였다. 2015년에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로카르노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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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 인생은 여배우 김민희와 만남 이후 전환점을 맞았다. 2015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처음 호흡을 맞춘 22살 연하 톱스타 김민희(38)와 불륜설에 휘말렸고,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불륜설에 줄곧 함구하던 두 사람은 2017년 3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사랑하는 사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 화제의 중심에 섰다. 홍 감독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지만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다며 법원은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홍 감독은 그 뒤로 김민희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감독과 뮤즈로 협업하고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2017), '클레어의 카메라'(2018), '풀잎들'(2018), '강변호텔'(2019)에 이어 '도망친 여자'는 김민희와 7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는 두 사람의 자전적 내용이나 실제 관계를 연상시키는 설정, 대사들이 담겨 눈길을 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선 불륜설에 휩싸인 두 사람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 세상을 향한 항변이 대사 곳곳에 담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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