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은 현재에 안주하는 배우가 아니다. 영화 '브이아이피'(8월 23일 개봉)에서 기획 귀순자 김광일 역할로 악인의 냉기를 온몸에 입힌 그는 청춘스타답지 않은 파격 변신을 감행했다. 국정원, 검찰, CIA, 보안성까지 세 나라에 추격 당하는 악마 김광일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종석을 만났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과 함께 컴백한 이종석의 속사정 10가지를 전해 들었다.

 

1. 느와르를 동경했다

다양한 작품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청춘 배우 이종석에게 남자 일색 정통 느와르 '브이아이피'의 시나리오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애당초 신인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돼있던 김광일 역에 러브콜을 보냈다. 확실히, 김광일 캐릭터는 여러 드라마를 통해 차근차근 쌓아온 '만찢남' 이미지와는 정확히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제가 했던 캐릭터들과는 많이 다르죠. 그래서 생겨날 가치에 욕심이 갔어요. 감독님을 향한 신뢰도 있었고요. 저도 남자 영화를 동경해요. 제가 그동안 갖고 있던 이미지를 다들 좋아해 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담배랑 욕설을 달고 사는 채이도(김명민) 같은 역할은 제 스스로도 잘 상상이 안 가지만, 김광일 역할은 제가 가진 것들을 무기로 삼아서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2. 처음엔 김광일 역할에 공감하지 못했다

모두가 주시하는 자 김광일은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살인을 저지를 때의 미묘한 조소에 서린 태곳적 여유로움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지만 분명 냉철하기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채이도가 패배의식을 건드렸을 때 광분하는 모습은 다분히 복합적임을 드러낸다. 

"채이도를 바라볼 때의 미소는 내 신경을 자극하는 인물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서인 것 같아요. 딱 한 장면 광분하는데, 저도 침착하던 인물이 갑자기 광분하는 게 궁금해서 감독님께 여쭤봤거든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을 주는 인물이 처음이니까 그런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첫 장면, 살인을 저지를 때의 제 표정이 애매모호해요. 저도 그 당시엔 정확하게 어떤 감정이고 어떤 캐릭터인지 공감을 못했거든요. 근데 그게 영화로 보니까 또 괜찮아 보이더라고요.(웃음)"

 

3. 어린 팬들이 충격받을까봐 걱정된다

이종석은 국내 배우 중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1위에 빛나는 배우다. '청춘스타' '만찢남' 등의 타이틀이 따라붙는 그에겐 어린 연령대의 팬들도 다수 존재한다. 살인마로 출연하는 '청불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어린 팬들이 충격받을까봐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에 어린 팬한테서 SNS 쪽지가 와서 보게 됐어요. 이 영화가 너무 보고싶다고 하더라고요. 난생 처음으로 쪽지에 답장해봤어요. 응원해줘서 너무 고맙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봐달라고 그랬죠. 혹여나 정말 어린 친구들은 이 영화를 보고 상처받을 것 같아요."

4. 북한 사투리는 자신 있었으나, 영어는…

북한 사투리는 영화 '코리아'와 드라마 '닥터 이방인'을 통해 배웠던지라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헌데 복병은 영어였다. 피터 스토메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위해 녹음 파일만 수천 번은 들은 것 같다.

"북한 사투리는 고위층 자제고 해외에 나가있던 시간이 더 많은 만큼 세련된 어투를 구사해야 했어요. 감독님은 북한과 서울말의 중간 정도로 대충 연기하라고 하셨고, 대신 강조하신 게 있다면 바로 영어였어요. 근데…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저도 땀이 나는 듯 했어요. 다 보고나서 매니저한테도 물어봤는데, 연기는 괜찮았지만 영어는 좀 이상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5. 박훈정 감독과 친하게 지냈다

현장에서 국정원팀과 경찰팀은 각자 돈독하게 지냈다고 전해지는 가운데, 이종석은 박훈정 감독과 친하게 지냈단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끔은 어렵기도 했지만, 지켜본 결과 박 감독은 아무래도 츤데레 스타일 같다. 

"감독님은 원래 각본을 쓰셔서인지 디렉션도 상당히 포괄적이지만 원하는 건 분명히 있으신 것 같아요. 평소엔 칭찬에 박한 츤데레 스타일?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텐데, 선배들한테도 그러시더라고요(웃음). 배우들이 변수를 주는 걸 못하게 하고 디렉션만 툭툭 던져주시니까,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따라가게 됐어요. 저는 감독님하고 계속 붙어있었는데, 약과도 몇 번 얻어 먹었어요. 수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선배들한텐 안 주는 걸 저랑은 하도 붙어있으니까 좀 주시더라고요."

6. 캠코더로 자체 촬영 후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매 작품마다 캠코더로 연기하는 모습을 찍어서 모니터를 하는 편이었다. 집에 가서 다시 연기하는 모습을 돌려본 후 반성도 하고, 연결 신의 보완 방법을 갈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박훈정 감독은 이번 영화만큼은 그러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그냥 두시더니, 나중에는 못 찍게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걸 아셔서 그러신 것 같아요. 이 영화 이후로 앞으로도 캠코더 없이 해보려고 해요. 그게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불안하긴 한데 조금 더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상대방이 주는 대사를 그때 그 순간에 받아서 하는 재미도 생겼고요." 

 

7. 영화 속 등장하는 모피 코트 초이스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자들 사이에선 영화 속에서 이종석이 입고 나오는 모피 코트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뉜다. 잘 어울린다는 의견도 많지만  쌩뚱 맞다는 의견 역시 다수다.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서 고른 옷이거든요(웃음). 퍼의 부피와 두께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색상은 어떤 걸로 할 것이냐. 감독님이 고르신 옷인데, 저는 그 옷을 입고 나오는 장면이 그렇게 보일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그 코트에 시선이 그렇게 많이 갈 줄은 몰랐거든요(웃음)."

 

8. 가끔 연기를 하다가 얼굴이 새빨개진다

연기라는 게 결국 허구를 연출하는 것 아닌가. 연기를 하다가도 '이건 거짓말이다'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얼굴이 빨개진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보니 곤욕스럽다. 가끔은 색 보정이 필요할 정도로 빨개질 때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영어 대사할 때 유독 귀가 빨갛거든요. 피터 스토메어와 연기를 할 때였죠. 아무리 몇천 번을 듣고 몇백 번 연습한 대사를 내가 잘 외웠다 하더라도, 정작 이 사람 대사를 내가 못 알아듣고 있는 거예요. 언제 대사가 끝날지도 모르고, 또 언제 내가 대사를 쳐야 하는지 눈치를 봐야하니까… 그 와중에 또 박재혁(장동건) 봐가며 미소 짓고, 표정은 나긋나긋하고 해야 하고. 결국 귀가 빨갛게 물들더라고요(웃음)."

 

9. 지금은 슬럼프를 극복 중이다

현재 지난한 슬럼프를 겪고 있다. '닥터 이방인' 때 찾아온 슬럼프를 3년째 극복 중이다. 아무도 몰랐던 이종석의 슬럼프는 어떤 이유에서 찾아오게 된 걸까.

"지금에서야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닥터 이방인'을 촬영할 때가 배우로서 제일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과 자아가 캐릭터의 방향성과 부딪히게 되니까 슬럼프가 오게 되더라고요. 묘사를 하고 목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굉장히 괴로웠는데, 송강호 선배님이 '잘 하고 있다'고 문자 주신 게 큰 힘이 됐죠. 지금도 슬럼프를 극복하는 중인 것 같아요."

10. '브이아이피'는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개봉 전부터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고 있는 만큼 '브이아이피'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이종석에게도 의미있는 모험이 될 것 같다.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진 잘 모르겠어요. 저도 평가를 보고나면 이번 영화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죠. 확실한 건 '브이아이피'는 그동안 해보지 않은 모험이었고, 결국 제게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브이아이피'는 영화로 보기 전까지 캐릭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분들의 반응을 어서 보고 싶어요."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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