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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설경구 "'살인자의 기억법' 배우인생 변곡점"

많은 인기를 끈 소설이 영화화 될 때, 그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미 독자들의 머릿속에 각인 된 이미지를 지우고 새로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은 무엇보다 힘들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설경구(50)는 해냈다. 그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에서 왜 자신이 오랜 시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입증했다.

 

무더위가 싹 가신 초가을의 어느 날, 배우 설경구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크린 속 핏기 없는 모습과는 달리 얼굴 가득 만족스런 미소를 띤 채 반갑게 맞아준 그의 태도에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가 미스터리한 남자 태주(김남길)를 만난 이후로 잊고 있던 살인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범죄 스릴러다. 설경구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 역을 맡아 파격 변신에 나섰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역할이었어요. 해보지 않은 연기라는 점도 그렇지만, 특히 외형적으로 신경이 많이 쓰였지요. 감독님이 50대 후반으로 나이를 설정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는 60대로 보이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제 모습만 보게 되더라고요. 신은 넘어갔는데 ‘내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나?’하고 강박적으로 매달렸어요. 지나고 보니까 좀 사소한 걱정이었던 것 같네요.(웃음)”
 

그는 관객들이 공감하기 힘든 살인마 캐릭터를 상업영화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원작 소설의 문학적 색깔과 시나리오의 감정적 끌림이 섞이길 바랐다”는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해석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살인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면 감정이입이 힘들 것 같았어요. ‘기억’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죠. 소설에서처럼 진짜 살인을 즐기는 온기 없는 캐릭터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딸을 지키겠다’는 보편적인 부성애 감각을 추가해서 온기를 좀 준 것 같아요. 물론 살인은 나쁜 거예요.(웃음) 그래도 관객분들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각색이 잘 된 것 같아요.”
 


이날 인터뷰에서 설경구는 자신이 어떻게 역할을 준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갔다. 특히 외형적으로 특수분장에 의지하기 보단 실제로 늙어보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독하게 살을 뺐다고 전했다. 여기에 감정을 잡기 위해 홀로 숙소에 ‘자진감금(?)’ 시키는 등 정신적 노력도 병행하는 등 완벽히 병수로 변신하기 위해 모든 내공을 투입했다.

“이번 영화에선 특수분장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았어요. 정신을 잃기 전에 하는 안면경련이나 자연스런 표정 변화가 중요한데, 특수분장을 하면 표정을 살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냥 늙어볼게요’라고 했지요.(웃음) 온몸의 기름기를 쫙 빼고, 첫 촬영 5일 전에 현장 내려가서 홀로 자진감금돼 살기도 했어요. 제가 지방 숙소 생활에 이골이 난 사람인데도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머리가 엄청 빠졌어요. 떨어진 머리카락 주우려고 늘 손에 테이프를 들고 다녔어요.”
 

그간 설경구는 늘 쉽지 않은 배역 맡아온 ‘고난의 대명사’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병수 캐릭터는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유독 어려운 역할임에 틀림없다. 그에게 왜 이 어려운 캐릭터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그때는 몰랐어요. 지금 보니까 수 년 간 비슷비슷한 역할을 되풀이 했더라고요. 처음과 같은 긴장감이 전혀 없었어요. 심지어는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했어요. 그러던 차에 ‘살인자의 기억법’ 시나리오가 들어왔어요. 되게 고마웠죠. 이 순간 마음가짐이 바뀌더라고요. 예전엔 캐릭터를 이해하려고만 했는데, 이 시나리오를 보고서는 ‘병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무척 흥미로운 과정이었죠. 제 배우 인생의 변곡점이라고 할까요.”

  


올해로 50대에 접어든 설경구는 인터뷰를 통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연기 인생을 되돌아봤다. 25년 간의 숱한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골라달라는 질문을 전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이번 작품을 빼면 ‘박하사탕’ ‘공공의 적’ ‘불한당’ 세 작품이 기억나요. 그 중에서 ‘박하사탕’은 앞으로도 제 마음 속에 넘버원이에요. 영화가 익숙하지 않을 때인데, 현장에서 늘 숙제를 쌓아둔 초등학생처럼 불안하게 있었던 기억이 나요. 제가 계속 영화를 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죠. 상이라는 게 중요한 건 아닌데 굉장히 좋은 걸 알게 됐죠.(웃음)

두 번째는 ‘공공의 적’이에요. ‘박하사탕’이 영화를 계속 하게끔 만들어준 작품이라면, ‘공공의 적’은 대중께 한 걸음 다가간 영화지요. 제 이름으로 된 웨이터 명함은 못봤어도 ‘강철중’이라는 웨이터 명함은 길바닥에 많이 있더군요.(웃음) 마지막으로 ‘불한당’은 ‘살인자의 기억법’ 촬영 끝나고 나서 바뀐 마음가짐으로 만난 첫 영화에요. 감독님, 스태프 다 젊고 패기 넘치는 현장이었죠.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제게 엄청난 자극을 줬어요.“

 

‘살인자의 기억법’은 6일 개봉과 동시에 실시간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질주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몇 년 간 흥행에 있어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를 받았던 설경구에게 이번 작품은 ‘명예회복’ 기대감을 품게 한다. 하지만 그는 관객수에 대한 욕심보다는 “얘깃거리가 되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스스로 무척 많은 고민을 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관객분들도 그 고민에 조금 공감을 해주셨으면 해요. 친구들하고 밥을 먹거나, 술을 먹으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기억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내 속의 악마성도 좋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아요. 소설에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이길 수가 없거든’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이것도 한 번 같이 생각해 주시면 재밌을 겁니다.”

  


이제 연륜과 내공이 최고조에 이르는 쉰 살, 지천명의 나이가 된 설경구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물음을 건넸다. 돌아온 대답이 명쾌했다.

“이 나이에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배우로서 계속 새롭고 싶어요. 그래서 ‘박하사탕’ ‘공공의 적’처럼 관객 분들이 계속 기억해주시는 캐릭터를 매 작품 남기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은근히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엔 좀 뜸했죠?(웃음) ‘살인자의 기억법’을 시작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사진=쇼박스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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