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을 ‘너의 췌장’ 신드롬에 빠뜨렸던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감독 츠키카와 쇼)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다. 일본에서만 250만 부 이상 팔린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파격적인 제목과 상반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예고, 영화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이하 ‘너의 췌장’)는 모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며 지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오구리 슌)가 폐관이 결정된 학교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12년 전 첫사랑을 추억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화는 12년 전 우연히 동급생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의 ‘공병문고’를 주운 나(키타무라 타쿠미)가 그녀와 조금씩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마음의 파장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너의 췌장’에선 꽤 여러 일본 로맨스영화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이라거나, 불치병에 걸린 캐릭터, 고등학생들의 로맨스는 ‘러브레터’(1995),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2009) 등 과거부터 최근까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소재가 모여 있다.

앞서 여러 영화들이 많이 만진 소재들을 가져왔지만, 이 작품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건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앞선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다’가 떠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소통이라는 감상을 올곧게 밀어 붙인 특별한 ‘사랑영화’였다면, ‘너의 췌장’은 첫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조명하는 ‘추억영화’다.

처음부터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되는 영화는 끊임없이 사쿠라의 행동을 관찰한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미소와 행동은 ‘나를 정말 좋아한 것일까?’하는 의문을 남긴다. 이는 첫사랑을 돌이켜 볼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보편적인 궁금증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영화에 몰입하고, 공감하며 미소 짓는다.

영화는 이런 추억이 전하는 감수성을 배가하기 위해 풋풋함을 추가한다. 사쿠라는 적극적인 듯 보이지만 늘 부끄러움에 감정을 돌려 말하기 일쑤고, ‘나’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어리숙함이 묻어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래봤음직한 행동을 스크린에 펼쳐낸다. 또 일본영화 특유의 태양광 머금은 비주얼도 곳곳에 활용돼 캐릭터의 감정을 대변한다. 이 풋풋함 덕분에 ‘너의 췌장’은 시한부 사랑 소재가 전달하는 비극성보다도 첫사랑의 아련함에 방점이 찍힌다.

 

이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첫사랑의 아련함을 단순한 한 때의 감정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큰 경험으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흔히 '어린 것들이 뭘 알아'라는 말로 우리네 첫사랑은 '풋사랑' 혹은 '오글 거린다'는 표현으로 격하되고 만다. 실제로 학창시절을 직접 조명하는 로맨스가 관객들의 가슴에 직접 와닿기란 쉽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너의 췌장'도 어쩌면 학생들의 치기로 치부될지 모른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현재의 '나'가 과거 첫사랑의 기억을 통해 어른이 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동력을 얻게 된다는 건 관객들 가슴에 '허튼 사랑은 없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아련함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던 건 배우들의 공이 크다. 특히 사쿠라를 연기한 하마베 미나미는 작품 전체에 설렘을 가득 뿌린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밝음을 잃지 않는, 다소 어려운 배역을 맡았음에도 특유의 청량함으로 감정의 이면을 유려하게 표현해 냈다. 첫 주연작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하면서 한국 관객들까지 매혹할 채비를 마쳤다.

뿐만 아니라 12년의 차이를 둔 ‘나’ 역의 키타무라 타쿠미와 오구리 슌의 감성 싱크로율도 상당하다. 특히 어른이 된 ‘나’가 사쿠라의 진심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오구리 슌 특유의 순수한 표정연기를 만끽할 수 있다.

 

사진='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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