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1인가구(만 20~34세)는 주로 임차주택에 거주한다. 특히 주거 안정성이 낮은 원룸(60.2%)과 오피스텔(21.3%) 비율이 높다. 원룸에 비해 주거 여건이 열악한 지하나 반지하, 옥탑방, 쪽방 거주 비율도 5.8%로 전체가구(3.1%)에 비해 높았다.

 

 

전체가구 중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로 대표되듯 주거 빈곤이 가장 심각한 청년세대 현실과 비교하면 중소규모 컨설팅회사 대리인 5년차 직장인 이영란(32)씨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그나마 전세를 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전세 유목민’이라 네이밍 하는 이씨가 걸어온 서울 입성 후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강원도 강릉 태생인 이씨는 지방대를 졸업하고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직장을 구하기 위해 2013년 9월 상경했다. 여동생이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어 함께 살기 위한 용도로 전세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함께 취업 스터디를 하는 상황이었던 데다 집안으로부터 목돈을 지원받기도 힘들어 우연찮게 전해들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청년 전세임대주택을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엔 1순위(생계·의료급여 수급자 가구 청년)가 아니라 떨어졌으나 두 번째 신청에서 통과돼 동생의 학교와 가까운 강북 미아동에 보증금 6500만원의 전세 빌라에 입주했다. 방 2개, 거실 겸 주방, 화장실 1개를 갖춘 13평형 집이었다.

 

 

청년 전세임대주택은 입주대상으로 선정된 청년(대학생 및 취업준비생)이 거주할 주택을 물색하면 LH에서 주택소유자와 전세계약 체결 후 재임대하는 주택이다. 임차인을 LH로 계약 후 전대차로 입주대상과 계약해서 저렴한 임대료로 전세거주를 하는 형태다. 현재 지원 한도액은 1인가구 8000만원, 2인가구 1억2000만원, 3인가구 1억5000만원이다.

당시 이씨는 6500만원을 지원 받았다. 최초 2년 계약 이후 재계약 시 2회 연장(최장 6년)이 가능하며 1~2%의 저렴한 금리라 만족할 만했다. 하지만 전세 물량 자체가 별로 없는 데다 LH가 계약을 체결하는 주택 부채비율이 90% 이하여야 하고, 집 주인 동의를 얻어야하기 때문에 좋은 집이 많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2년이 지났을 때 직장인이 된 이씨는 미친 듯이 방을 구하러 다녔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하차해 마을버스를 타고 10분가량 가야하는 봉천동의 한 빌라(보증금 6500만원)를 가까스로 구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도 잠깐 등장한, 탄광촌 느낌이 나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일 것만 같은 동네였다. 미아동과 봉천동의 빌라 모두 마을버스를 이용해 언덕을 넘어야 했는데, 봉천동은 집까지 들어가는 골목이 길고 어두컴컴해 지인들은 “무섭다”고 걱정을 늘어놨다.

 

 

또 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이 잡듯이 이곳저곳을 뒤졌다. 직장 동료가 싸다고 해 보러 간 총신대 부근은 코딱지만한 방인데도 전세 7000만원이라 기함을 토했다. 우여곡절 끝에 양천구 목3동에서 인생템이 걸렸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직장이 있는 그는 직장과 가까운 위치, 인근에 친척 오빠가 사는 점, 조용한 동네 분위기와 치안이 좋은 점에 끌려 LH 지원 8000만원에 모아놓은 2000만원을 보태 보증금 1억원, 월세 5만원(10만원을 사정사정해 절반으로 깎았다)짜리 빌라 5층 전세(13평형)를 구했다. 언덕을 피하니 계단에 받힌 꼴이다.

오르내릴 때 숨이 차긴 하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집이라 이씨와 여동생은 계약기간 2년이 끝나더라도 계속 이곳에서 지내려고 한다. 연소득 6000만원 이하 무주택 직장인이며 시가 5억원·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이므로 한도 2억원 이내의 ‘내집마련 디딤돌 대출’을 신청할 계획이다.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주택청약종합저축통장을 매달 불입하는 정도인 이영란씨는 내집 마련에 대한 꿈을 꿔본 적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청년주거 지원정책을 진행한다곤 하지만 행복주택, 공공지원주택, 사회주택, 산단형주택, 여성안심주택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책 홍보의 부족과 함께 직장이나 학교가 위치한 서울 내에선 턱없이 모자란 물량, 복잡한 내용과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멍 때리고 있기 일쑤다.

이영란씨는 "거주하기 편리한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게 로망이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아 앞으로도 ‘전세 유목민’으로 계속 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유목민의 길은 비틀스 노래처럼 'Long and winding roa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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