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가 내 목줄을 움켜쥐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당당히 정의를 외칠 수 있을까? 영화 ‘더 포스트’는 그 딜레마를 그려낸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정의를 위한 결심을 내리는 모습은 참 숭고하고도 꽤나 인간적이다.

 

‘더 포스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1971년 미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 실화를 소재로 한다. 정부가 30년 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알려지자,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은 정부의 조작을 폭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회사와 자신, 모든 것을 걸고 보도를 해야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물론 역사가 스포일러를 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결말에 대한 기대는 다소 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포스트'는 심도 깊은 메시지와 언론사 내부의 사연을 마치 스파이 장르영화를 보는 듯한 쫀쫀한 긴장감으로 꾸며 극적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독자들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보도를 하고자하는 편집장 벤과 자신의 아버지와 남편이 지켜온 회사 워싱턴 포스트를 지키고자 하는 회장 캐서린의 대립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 대립은 정의로움에 대한 딜레마를 명확히 드러낸다. 언뜻 둘의 관계는 진실을 밝히려는 ‘영웅’과 그를 방해하는 ‘악당’으로 비칠 수 있지만, 캐서린의 딜레마 또한 너무 인간적이기에 비난할 수가 없다.

사실 ‘더 포스트’의 주인공은 과감히 정의로 돌진하는 벤이라기 보단 망설이는 캐서린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사진에게 무시를 당해온 그녀는 늘 스스로 선택하기 보단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생 처음 스스로 해야 하는 선택이 하필이면 회사의 존폐와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무너뜨릴지 모르는 무거운 결정이다. 영화는 캐서린이 이 선택을 어떻게 완성해 가는지, 또 그 과정에서 이 여인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조명한다.

 

여기서 잠시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딜레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극 중 ‘펜타곤 페이퍼’의 고발자 댄은 미국이 베트남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0%는 월남을 도와주기 위해, 20%는 공산주의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70%는 미국의 패배를 볼 수 없기 때문이야.” 미국은 ‘세계 최강’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목숨을 희생하고 있었다. 이는 ‘패배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언론의 가치와 회사의 존폐 사이에서 고민한다. 사실 그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추구하는 기자가 아니고, 경영자이기에 회사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캐서린이 가진 딜레마는 자신이 경영자이기 전에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에 발생한다. 전쟁터로 아들을 보냈던 경험이 있는 어머니로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에 분노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 메시지의 관건은 미국 정부도 하지 못한 ‘패배할 용기’를 일개 국민이자, 여성이자, 회사를 지켜야하는 경영자인 캐서린이 낼 수 있느냐다. 

 

이처럼 숭고한 선택과 인간적인 고뇌라는 ​‘더 포스트’의 멋스런 메시지를 빛내는 건 명품배우 메릴 스트립의 내공이다. 흔히 메릴 스트립하면 당당하고 멋진 ‘걸크러시’ 면모를 떠올리지만, 이번 작품에선 조금 다르다. 언론사 회장이지만 수동적이고 소심한 노인의 모습을 연기해 낸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조금씩 눈빛에 변화를 줘 정의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진폭 넓은 감정을 유려하게 넘나든다.

러닝타임 1시간56분. 12세 관람가. 28일 개봉.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